“‘삼국사기’의 백제 신라 초기 기록을 불신하는 지금의 통설을 무너뜨리지 않는 한 한국 고대사연구는 발전할 수 없습니다.”
20년 넘게 한국고대사연구의 통설을 비판하면서 이의 극복방법을 모색해온 이종욱 서강대교수(53·한국사). 그간의 성과물을 묶은 새 저서 ‘한국고대사의 새로운 체계―100년 통설에 빼앗긴 역사를 찾아서’(소나무 펴냄)를 내놓았다. 역사학계에 던지는 도전장이나 다름없다.
이교수가 말하는 ‘통설’은 삼국사기 초기기록 불신론. 그동안 고대사학계는 대체로 삼국사기 초기기록을 믿지 않았다. 초기기록 불신론은 한국 고대사학계의 주류였다.
이교수는 초기기록이 왜 잘못됐는지에 대한 객관적인 검증도 없이 무조건 불신해 왔다고 비판한다.
“삼국사기에서 백제는 고이왕(234∼286), 신라는 내물왕(356∼402) 이후의 기록부터 믿을 수 있다는 주장인데 그렇다면 백제사와 신라사의 절반을 포기해야 한다는 말입니까.”
삼국사기 초기기록을 불신하고 중국의 ‘삼국지 동이전’에 의존하는 역사연구는 일제시대 식민사관에서 비롯됐다고 이교수는 본다. 1∼3세기 백제와 신라가 마한과 진한의 소국(小國)에 불과했다는 삼국지 기록을 내세워 백제 신라의 정치적 성장을 무시하려는 일제의 의도였다. 이를 바탕으로 일제는 당시 한반도 남부에는 강력한 정치세력이 없었고 이같은 상황에서 왜가 한반도 남부를 정복하고 임나일본부를 세웠다고 주장했다.
이교수는 “삼국사기를 부정하고 삼국지를 인정해야 한다는 근거가 어디에 있느냐”고 반문하면서 “오히려 삼국사기 초기 기록 중 기후(氣候) 관련 내용이 객관적 사실로 입증된 점 등으로 미루어 초기기록을 믿어야 한다”고 주장한다. “우리 학계가 임나일본부설 등은 부정하고 있지만 삼국사기 초기기록을 불신하는 것은 아직도 식민사관에서 벗어나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이렇게 한국사 연구 100년이 흘러왔습니다. 비극이자 희극인 셈이죠.”
한국고대사 연구에 입문한 이래 줄곧 비주류에 서있는 이교수.
“저의 주장에 공감하는 사람이 늘고 있습니다. 일단 큰 물줄기를 틀었다는 점에 보람을 느끼고 있습니다.”
〈이광표기자〉kplee@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