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도체 장비업체인 주성엔지니어링이 국내 기업 공개사상 최고의 공모가를 내걸었다. 주성엔지니어링은 액면가 500원의 60배인 3만원의 공모가로 다음달 코스닥시장에 등록할 예정이다.
반도체 소자 제조용 화학증착장치를 생산하는 주성엔지니어링은 국내에 몇 안되는 반도체 핵심장비 제조업체. 황철주(黃喆周·41)사장은 엔지니어 출신으로 93년까지 외국계 반도체 장비업체인 한국ASM에 근무했다.
95년 봄 퇴직금 5000만원으로 수원의 작은 사무실에서 창업하겠다고 나섰을 때 주변에선 말리는 사람이 많았다.
세계적인 장비업체들이 막강한 자본과 기술로 대부분 시장을 석권하고 있는 마당에 자본금 수천만원의 중소업체가 도전장을 내민 것은 엄청난 모험이었기 때문.
그러나 주위의 우려도 잠시,황사장은 창업 1년여만에 ‘유레카2000’이라는 저압화학증착 장치를 개발하는 데 성공했다. ‘유레카2000’은 반도체 웨이퍼에 폴리실리콘이나 나이트라이드같은 각종 화학물질을 입히는 반도체 제조용 핵심장비.
우리나라는 D램 반도체 분야에서 세계 최고를 자랑하지만 반도체 장비산업은 한참 뒤쳐져있는 게 사실.
대부분의 핵심 장비는 일본 등에서 수입해 쓰고 있다. 창업 1년된 중소업체가 대당 30억원을 넘는 핵심 장비를 개발했다는 사실만으로도 엄청난 뉴스감이었다.
유레카2000은 삼성전자에 이어 LG반도체와 현대전자 등 국내 3사의 양산 라인에 잇따라 채택됐다.
이후 미국과 대만에 이어 내로라하는 장비업체들이 버티고 있는 일본에까지 수출되는 값진 성과를 일구었다.
제품이 나온지 1년만에 ASM 고쿠사이 등과 같은 세계적인 업체들을 제치고 이 분야 전세계 수요의 50% 이상을 차지하는 기염을 토했다.
첫해 12억5000만원이던 매출액은 매년 125%씩 고성장, 지난해 500억원을 넘어섰다. 부채비율도 33%에 불과한 탄탄한 중소기업으로 성장했다.
이같은 성공의 배경에는 매년 매출액의 20%가 넘는 연구개발비 투자와 함께 ‘사람이 최고의 재산’이라는 황사장의 경영관이 깔려있다.
과장급 이상 연봉제 사원들은 1년에 한달간 재충전을 위한 유급 휴가를 갖는다. 잠시 쉬면서 자신의 정체성을 생각해볼 기회를 주는 것이다.
직원들을 ‘선수들’이라고 부르는 황사장은 자신도 사업가이기에 앞서 엔지니어임을 강조한다. 수입한 외국 장비를 다루던 엔지니어에서 이제는 손수 만든 장비를 외국에 수출하는 업체의 ‘엔지니어 대표’라는 생각이다.
〈홍석민기자〉smhong@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