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정숙(裵貞淑)씨가 22일 이른바 ‘사직동 문건’을 전격 공개한 직후 최병모(崔炳模)특별검사실 앞 복도는 아수라장으로 변했다.
“‘사직동 문건’이 맞는가.” “왜 공개했는가.” “연정희(延貞姬)씨는 어떻게 이 문건을 입수했는가.”
기자들의 질문이 쏟아졌으나 배씨는 입을 굳게 다문 채 함구로 일관했다. 답변은 배씨측 박태범(朴泰範)변호사가 대신했다.
배씨가 문건의 출처를 연씨로 공개한 이상 이제 초미의 관심은 누가 연씨에게 그 문건을 제공했는지에 모아지고 있다.
정작 문건을 공개한 배씨측 박변호사는 “모든 것을 특별검사팀에서 밝혀야 할 사항”이라며 구체적인 답은 피했다.
앞으로 특검조사에서 연씨의 진술을 통해 구체적인 사실이 드러나겠지만 현재 여러가지 정황을 종합하면 ‘사직동 문건’일 가능성이 상당히 높다.
경찰의 한 수사전문가는 우선 문장 첫머리에 ‘ □ ―’ 등의 부호를 사용했다는 점에서 ‘공문서의 냄새’가 물씬 풍긴다고 분석했다.
김대중(金大中)대통령을 지칭하면서 ‘각하’대신 새정부 들어 사용하는 ‘대통령님’으로 표현한 부분도 눈에 띈다.
문건 내용도 앙드레김과 라스포사에서 구입한 의류 명세와 유언비어 유포경위 등에 대한 조사상황이 구체적으로 담겨 있다. 수사능력이 없는 일반인이 옷로비가 항간에 알려지기 전인 1월 당시 상황에서 작성했다고 주장한다면 한마디로 ‘난센스’이며 의미없는 문건을 검찰총장부인이 보관하고 있다 전달할 이유가 없다는 것이 유력한 정황증거다.
공개된 문건 가운데 마지막 항목 ‘유언비어 조사결과’에도 수사기관 작성 가능성을 입증하는 대목이 있다. ‘종업원 이혜음의 진술에 의하면’ ‘라스포사 의상실 상대로 진위여부 확인요함’ 등 조사 사실과 향후 수사방향까지 제시하고 있는 것이다.
배씨가 공개를 결심한 것은 ‘더이상 밀려서는 안된다’는 벼랑끝 위기감이 작용한 것으로 보인다. 배씨측은 당초 특별검사가 문건을 압수한 뒤에도 “사위와 청문회를 앞두고 도상연습한 것”이라며 제공자를 애써 ‘보호’하려고 했었다.
그러나 배씨측은 이미 본보취재팀에 7월초 문건의 존재를 실토한 상태였다. 검찰이 “연씨는 호피코트를 구입할 의사가 전혀없었다”고 발표한 수사결과를 뒤집음으로써 자신에게 ‘십자가’를 지도록 한 검찰수사의 기본골격을 무너뜨리겠다는 의도에서였다.
당시 배씨측은 문제의 문건 입수경위를 이렇게 털어놓았다.
배씨가 사직동조사 직후 1월21일 서울시내 한국병원에 입원하자 연씨와 이은혜(李恩惠)씨가 병문안을 왔다. 이때 ‘한 부 갖고 있으라’며 사본을 건넸다는 것. 연씨는 당시만 해도 사직동조사로 모든 사건이 종료될 것으로 판단한 것 같다고 배씨측은 말했다. 당시 상황을 잘 아는 연씨측은 “배씨가 ‘연씨가 1000만원대 쇼핑을 일삼고있다’고 소문을 낸 것으로 조사된 경위를 듣고 싶어서 문건을 보여줬다”고 설명했다.
연씨는 ‘잘 아는 사람’에게서 이 문건을 넘겨 받았다는 것이 배씨측 주장이다. 배씨측은 사직동팀 조사가 일단락됐으니 조사결과를 알고 있어야 한다는 이유에서였다고 기억했다.
특검팀은 “우선 사직동팀의 해명부터 듣고 싶다”고 반응했다. 특검팀 내부에는 수사의 방향이 ‘옷 로비 의혹’에서 ‘권력의 축소 은폐조작’으로 비화될 수도 있다는 점에서 팽팽한 긴장감이 감돌고 있다.
〈김승련기자〉srkim@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