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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리뷰]'더 복서'/아일랜드 복싱영웅의 꿈과 사랑

입력 | 1999-11-25 18:51:00


‘더 복서’는 ‘나의 왼발’(90년 아카데미 남우주연상) ‘아버지의 이름으로’(94년 베를린영화제 대상)에 이어 배우 대니얼 데이 루이스와 짐 세리딘 감독이 세번째로 만난 작품. 아일랜드의 수도 더블린 출신인 세리딘 감독과 영국 런던에서 태어났지만 아버지가 아일랜드 태생인 루이스가 함께 작업한 세 작품들은 모두 아일랜드의 실존 인물이나 사건을 다뤘다.

이 작품도 아일랜드의 국민적 권투 영웅인 배리 맥기건의 일대기를 소재로 했다. 30여년간 유혈분쟁이 끊이지 않는 북아일랜드를 배경으로 권투선수 대니 플린(대니얼 데이 루이스 분)의 꿈과 사랑이 그려진다.

제목에서는 ‘로키’류의 치고받는 권투 영화를 연상하기 쉽다. 그러나 링은 이 영화를 가두기에 너무 좁다. 이 작품에는 수백 년 간에 걸친 ‘북아일랜드의 비극’이 담겨 있으며, 목숨을 건 사랑과 사각의 링에서 펼쳐지는 한 인간의 투쟁이 소용돌이친다.

영국과 평화협정 체결을 앞두고 있지만 시시때때로 폭탄이 터지는 북아일랜드의 벨파스트. 한때 유명한 권투선수였던 플린이 IRA(아일랜드공화군)에 가담한 혐의로 감옥에서 14년을 보낸 뒤 가석방된다. 서른 중반의 나이에 다시 링에 오른 그가 트레이너였던 아이크(켄 스탓)와 함께 신 구교도를 구별하지 않는 권투 연습장을 열자, 아이들이 하나 둘씩 모여들기 시작한다. 플린은 ‘죄수의 아내를 사랑하면 IRA에 의해 처형된다’는 것을 알면서도 IRA 동료의 부인이자 옛연인인 메기(에밀리 왓슨)와 ‘금지된 사랑’에 빠져드는데…

극 중 ‘작은 무대’인 링은 현실과 대조적으로 평화에 대한 꿈을 보여주는 상징적 장치로 존재한다. 플린은 경기 중 저항할 능력이 없는 상대방을 더 이상 때리지 않고 경기를 포기한다. 겉으로는 가쁜 숨소리와 함께 피가 튀지만 평화로운 곳으로 비쳐진다.

반면 링 밖 ‘큰 무대’에서 사람들은 IRA와 영국군, 신교도와 구교도, 친영파와 친아일랜드파로 나뉘어 서로를 상처내며 공격한다. 저마다 그럴듯한 명분은 있지만 승자는 없고, 영원한 패자들만 존재한다는 게 이들의 시각.

맥기건의 지도로 실전같은 훈련을 치러내며 찍은 경기 장면이나, 깊은 눈빛으로 사람을 빨아들이는 루이스의 연기가 압권이다. 12세 이상 관람가. 12월4일 개봉.

〈김갑식기자〉gskim@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