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숱한 사람들을 고문으로 유린하고 고통을 안겨준 전직 경찰관 이근안씨. 그는 언제부터인가 ‘고문 기술자’로 불린다. 끔찍한 수법에 대한 적개심과 미움을 담은 표현일까. 피해자들의 피맺힌 호소 대로라면 그저 고문경관이라고 하기엔 모자란다 싶어 그렇게 이름 붙인 듯하다. 그러나 이 ‘간을 맞춘’ 표현이 참으로 기술에 인생을 건 진짜 기술자들에게는 또 다른 ‘고문’이 되는 모양이다.
▽한 대학교수가 ‘고문기술자’라는 말을 써서는 안되는 이유를 조목조목 댔다. 어느 신문에 실린 이 교수의 글을 읽다보니 쓴 웃음을 짓게도 된다. 사전에는 ‘기술이란 공예의 재주나 기예 학문 등으로 인류가 자연을 삶에 유용하도록 개변 가공하는 행위’로 되어 있다. 그런데 고문이 기예나 학문도 아닐뿐더러, 어디 인간생활에 무슨 도움이라도 주느냐는 반론이다.
▽그는 국가기술자격법도 들이댄다. 거기에 기술자란 산업분야에서 유용한 기술을 제공하는 자로 규정되어 있는데 고문이 과연 ‘산업’일 수 있느냐는 것이다. 또 건설기술자격관리법에는 ‘기술 자격’이 있어야 기술자인데 고문기술자라는 자격이 어느 법에 있느냐고 묻는다. 전국의 400만 기술자를 욕되게 하는 그런 표현을 언론에서 삼가라는 촉구다.
▽재(再)반론도 있긴 하다. 절도기술 사격기술 같은 범죄나 인마살상의 표현에도 기술이 붙는 수가 있다. 또 기술을 뜻하는 영어 아트는 ‘결합하고 짜맞춘다’는 어원에서 비롯한다. 그래서 고문도 사건조사 과정의 억지 ‘짜맞추기’니까 아트에 맞아떨어진다(?)는 억설을 펴기도 한다. 하지만 인간에 대한 수성(獸性)의 공격인 고문이 사라져야 할 범죄이듯, 고문기술자라는 단어도 삼가야 한다. 참 기술자들에게 주는 고통 때문에도 그렇고, ‘미운’ 혐의자 이근안씨에 대한 또다른 언어 ‘고문’이기에.
김충식〈논설위원〉searskim@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