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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속의 20세기]폭력미화/총과 칼의 섬뜩한 잔치

입력 | 1999-11-25 19:36:00


한 번이라도 맞아본 사람은 안다.폭력은 어떤 이유로도 정당화될 수 없다는 것을.

그러나 20세기의 영화 속에서 폭력은 관객에게 대리만족과 쾌감을 주는 수단이었다. 번뜩이는 칼날, 빗발치는 총탄, 고속으로 달리던 자동차들의 충돌까지 영화 속 폭력의 스펙트럼은 아주 넓다. 그 중앙에는 원초적인 폭력의 미학을 추구해온 ‘폭력영화’들이 자리잡고 있다.

폭력영화 계보의 출발점에 설 감독은 ‘피흘리는 샘’이라 불렸던 샘 페킨파. 폭력을 현대영화의 화두로 끌어들인 그는 ‘와일드 번치’(69년)에서 무지막지한 총격전 도중에 사람들이 죽는 순간을 느린 화면으로 잡아 ‘서정적으로’ 연출했다. 아마 이 영화는 무법자 총잡이들의 총싸움과 격렬한 폭력에서 장엄한 아름다움을 빚어낸 최초의 영화가 아닐까.

그의 폭력미학을 계승한 우유센(吳宇森)은 ‘영웅본색’(86년)과 ‘첩혈쌍웅’(89년)에서 발레처럼 안무된 총격전, 성당안에서의 결투처럼 비장한 분위기, 정교한 편집과 촬영으로 폭력을 통한 순수한 시각적 쾌감을 선사한다.

쾌감만으론 부족했던 것인지,쿠엔틴 타란티노의 ‘저수지의 개들’(92년)에서 잔혹한 폭력은 이제 유머의 대상일 뿐 도덕과 의미를 묻는 건 소용이 없다.

에리히 프롬은 파괴, 가학증, 잔인함으로 가득찬 현대의 영화들이 ‘죽음에 대한 매혹이 얼마나 깊어졌는지를 보여주는 것’이라고 진단했다.

‘삶은 성취하고 결합하려는 에로스(삶의 본능)와 파괴적인 타나토스(죽음의 본능)의 끊임없는 싸움터다. 죽음에 대한 사랑은 많은 일들이 직접적인 인간관계에 의해 결정되지 않는 기계적 질서가 지배적인 문화, 취미조차 조작되고 지성이 표준화되는 관료적 산업적 문화속에서 점점 더 발달한다….’

그 문화는 오늘 우리가 살고 있는 현대 사회 그 자체다. 세기말 서구에서는 폭력으로 관객의 인내심을 시험하는 ‘퍽 큐 시네마(Fuck You Cinema)’까지 등장했다. 그 원조격인 ‘퍼니 게임’(97년)에서 이유없이 한 가족을 괴롭히는 두 청년은 피해자들로부터 반격을 당하자 영화속에서 리모콘으로 상황을 반격 당하기 이전으로 되돌려놓고 끝내 살인을 저지른다.

그 가증스러운 폭력에 소름이 끼치지만, 그들은 어쩌면 우리 안에 잠복해있는 타나토스가 빚어낸 또다른 그림자일지도 모른다.

〈김희경기자〉susanna@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