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궁둥이를 놔두었다가 논을 살거나 밭을 살거나. 흔들대로 흔들어보자, 얼씨구나 절씨구∼.”
지난 주말 임권택 감독의 ‘춘향뎐’ 막바지 촬영이 진행되던 경기 용인의 민속촌. 암행어사 몽룡(조승우 분)이 춘향(이효정 분)을 구한 뒤 월매(김성녀 분)가 덩실덩실 춤을 추며 동헌 안으로 들어가는 장면 촬영이 한창이다.
김성녀가 부르는 판소리에 맞춰 동헌 앞에 밀집한 100여명의 엑스트라들도 함께 춤을 춰야 하는데 동작이 뻣뻣하자 정일성 촬영감독이 걸걸한 목소리로 고함을 지른다.
“아, 신나게 해야지, 남원에서 열녀가 났다는데 왜 가만히 있냐고요. 손이 안 올라가면 어깨라도 두둥실 하란 말야!”
여러 차례 반복된 촬영 끝에 “오케이” 사인을 낸 임권택 감독은 “드디어 이제 끝나갑니다”라며 시원한 표정이다.
국창 조상현의 판소리에 맞춰 촬영되는 ‘춘향뎐’은 제작사인 태흥영화사 이태원 사장이 “춘향전 뮤직 비디오”라고 말할 만큼 판소리의 비중이 높다. 촬영은 1초 단위로 계산돼 판소리의 리듬을 좇아간다.
“현장에서 찍은 필름을 나중에 소리와 맞춰보니 1, 2초 차이로 안맞는 경우가 많아 두 달치 촬영분을 모두 버리고 다시 찍었어요.”(임감독)
정일성 촬영감독도 “내 평생 카메라 이동차를 이렇게 많이 타보기는 처음”이라며 혀를 내두른다. 방자(김학용 분)가 춘향이를 데리러 가는 장면에선 기차 선로처럼 산에 카메라 이동레일을 깔고 판소리의 리듬에 맞춘 방자의 움직임을 좇았다.
두 백전노장이 가장 고전했던 대목은 ‘사랑가’장면. 임감독은 춘향과 몽룡의 농도 짙은 러브 신을 담는 이 장면에서 속이 탄 나머지 끊었던 담배를 다시 피우기 시작했다.
“100편 가까이 영화를 만들면서 한 장면 때문에 그렇게 애먹은 적은 없었어요. 소리는 죽음까지 노래하는 절절한 사랑인데, 현실에서 어린 애들(남녀 주인공)이 뭘 해봤어야 알지. 이틀에 한 커트를 겨우 찍었다니까.”
임감독에게 하도 혼이 나 여러 번 눈물을 쏟았던 춘향 역의 이효정은 몽룡이 탄 나귀를 붙잡고 매달리다 나귀 발에 밟히기도 하고, “수척해보여야 하니 살을 빼라”는 임감독의 엄명에 며칠을 굶다가 졸도하는 등 수난의 연속이었다.
고생은 사람만 한 게 아니었다. ‘고된 연기’를 못견뎌 줄행랑을 치기도 했던 나귀는 어느새 임감독의 사인을 알아듣는 경지에 올랐다. 오히려 가만히 서 있어야 하는 장면인데도 “레디,고!” 소리만 나면 움직이는 통에 여러 번 NG를 냈다.
임감독이 자신의 영화 이력에서 가장 실험적인 형식을 시도하는 ‘춘향뎐’은 29일 촬영을 끝내고 내년 설날 개봉될 예정이다.
“판소리에 ‘귀 명창’이 있다고 하는데 ‘춘향뎐’은 관객이 ‘귀 명창’처럼 소리의 맛을 대번에 알아차릴 수 있는, 그런 영화가 될 겁니다.”(임감독)
〈김희경기자〉susanna@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