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름다운 나의 귀신' 최인석지음/문학동네 펴냄▼
최인석(46)의 새 장편 ‘아름다운 나의 귀신’(문학동네)을 펼치는 순간, 작가는 재개발 구역인 익명의 달동네로 우리를 안내한다. 국회의사당이 내려다보이는 동네엔 남편을 잃고 나서 일찌감치 이곳에 터잡아 사는 염소할매가 있고, 손가락이 굽고 털이 돋아나는 기형아 솔개네 집이 있고, 부모살해범 혐의를 받고 구속된 정수네 집이 있고, 무당 당골네와 그를 사랑하는 소년이 있다.
작가는 중편 네 편을 배경과 사건의 끈으로 단단히 엮어맨다. 삽차와 타격대가 동네를 무참히 바스러뜨릴 때 까지, 네 주인공은 각자의 독특한 목소리로 추잡하고 비루하며 왜소한 이 동네의 사건들을 이야기한다.
좁은 골목을 뛰어다니던 아이들은 어느덧 직공으로 깡패로 자라나지만 그곳은 언제나 ‘망가지고 서서히 죽어가기 위해, 산다는 것이 얼마나 비참하고 세상이란 것이 얼마나 잔인한 곳인가를 입증하기 위해 만들어진 동네’다.
21년전 조세희가 ‘난장이가 쏘아올린 작은 공’에서 치밀하게 형상화했던 달동네. 어쩌면 두 장소는 같은 지점일 수도 있다. 솔개가 세상에 나온 ‘낙원산부인과’도 ‘난쏘공’의 무대인 ‘낙원구(區)’를 연상시킨다. 그러나 지나간 두개의 연대(年代)는 달동네를 무대로 한 두 작품에 만만치 않는 편차를 벌려놓는다.
‘난쏘공’에서처럼 선연한 계급대립은 없다. 세상의 악은 마을 바깥의 지배자가 아니라 마을의 안밖을 구분하지 않는 세상의 탐식, 걸기(乞氣)에서 나오는 것인가. 부모살해 용의자 정수는 자신에게 터무니없는 혐의를 씌우는 재판장을 ‘이 세상 전부를 삼켜도 오히려 허기에 허덕일 어미’와 동일시한다.
최인석의 소설속 주인공들에게 ‘사랑으로 일하고, 사랑으로 자식을 키우는’난장이식의 전망이란 없다. 그들은 다만 ‘양 같은 범’이 살고 ‘범 같은 양’이 사는 이상향이나 ‘직녀가 사는 플래닛 X’에의 상상속으로 퇴행해 들어간다.
구원의 길은 없는 것일까. 작가는 권두의 ‘작가의 말’을 통해 ‘안녕,환멸이여. 어서 와 내 식탁에 앉아서 술을 받으라’라며 짐짓 어설픈 구원의 가능성을 차단하고 있다.
열일곱이면 죽어갈 운명인 솔개가, 식물인간이 된 정수가, 그 비루한 일상에서 벗어날 길은 영원히 없는 것인지….
〈유윤종기자〉gustav@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