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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오래된 정원(282)

입력 | 1999-11-26 18:48:00


나중에는 구호도 일일이 만들어서 선창과 후창을 연습했어요. 땀 흘려 일한 댓가 정당하게 돌려받자. 민주노조 건설하여 노동해방 쟁취하자. 천만 노동자의 단결 투쟁 승리 만세.

어찌나 시간이 빨리 지나가는지 얄미울 정도였어요. 시간이 없다는 말이 어떤 건가 실감했다니까요. 파업의 요구 사항이 끝나자 대표부는 내친 기세로 그 자리를 민주노조추진위원회의 발기 모임으로 끌고 나갔지요. 민노추는 만장일치로 가결이 되었습니다. 다만 어느 정도의 반발이 있긴 했지만요. 위원장 한 사람과 두 사람의 부위원장과 감사를 함께 선출하고 부서는 파업 대표부의 부서대로 정해졌어요. 우리는 정말 하늘이 우리를 돕고 있는 듯했지요.

논의가 되기를 투쟁이 장기화할지 모르니까 규율을 세워야 한댔어요. 그래서 먼저 음주 금지라든가 무단이탈 금지의 대중적인 약속을 정했어요. 취침에서 기상까지 시간을 정하고 세 끼의 식사 시간과 분반토론, 총집회, 시위, 오락, 시간도 정하여 일상을 조직적으로 진행하게 되었습니다. 만약 저들의 방해 책동만 없다면 그대로 시행하되 급변이 일어나면 비상 태세를 취하는데 각 부 별로 행동지침을 마련했어요. 협상이 들어오면 협상부가 대응하되 대표는 일단 파업 주동 측에서 두 사람이 나오고 민노추의 위원장이 합세하기로 했지요. 우리는 회의장으로 식당을 점거하고 있어서 저녁 밥 때가 되자 자연스럽게 여성들이 나서서 취사를 했고 여덟 시 반에야 차례로 식사를 할 수가 있었습니다. 우리 손으로 파업비를 걷어 부식을 사다가 집에도 못가고 함께 둘러앉아 먹는 밥은 보잘것 없었지만 첫 숟가락을 넣는데 목이 메이더라고 남자들이 말했지요.

이튿날 첫 번째의 협상이 들어왔는데 부사장이 관리직 몇 사람과 함께 정문에 나타났어요. 경비부가 안으로 들어오려는 그들을 막고 정문 앞에다 책상과 의자를 갖다 놓고는 협상 테이블을 급조했죠. 우리는 그들을 자리에 앉히고 일단 전원이 정문 앞에 겹겹으로 둘러서서 구호를 선창 후창으로 외치고 노래도 부르면서 기세를 올렸어요. 그들은 처음에 나타났을 때 보다는 훨씬 위축되어 있는 것처럼 보이더군요. 우리 협상 대표가 나가서 논의를 했지만 목표에 너무 미달이어서 결렬을 선언하고 퇴장했습니다. 우리는 그날 새로운 방침을 세웠습니다. 날마다 사오백 명이 식당에서 농성하기도 쉬운 일이 아니고 아침이 되면 파업중이라 기계가 쉬고 있는데도 동조자들이 출근을 계속하니까 일단 작업장별로 나누어 농성하기로 한거예요. 그건 참 잘한 일이었습니다. 우리는 아침에 각 작업장별로 자고 일어나 시위대를 편성해서 정문 밖으로 내보낼 수가 있었거든요. 파업에 동참하러 출근하는 동료들을 버스 정류장까지 나가서 격려하며 데려올 수가 있었거든요. 적당한 수가 모이면 일부는 그들과 함께 돌아오고 다시 나가고 하면서 우리 자신들은 물론 공장 주변 시민들에게도 아지프로를 효과적으로 해내게 되었습니다.

사흘째 밤에 소동이 일어났습니다. 그때 식당에는 백여명이 있었고 개별 작업장에는 이백여 명이 사오십 명으로 분산되어 취침에 들어가기 직전이었어요. 갑자기 고함 소리가 들리며 유리창이 부서지는 소리와 요란한 구둣발 소리가 들려왔죠. 여공들이 새된 비명을 지르는 소리도 요란했어요. 구사대가 왔다, 얼른 모여라! 목쉰 소리로 남자들이 외쳤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