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급옷 로비의혹 사건으로 궁지에 몰린 김태정(金泰政) 전검찰총장이 이번에는 신동아 그룹의 최순영(崔淳永)회장을 선처해달라고 청탁한 사람이 많았다고 밝혔다. 최근 김씨를 대변해온 임운희 변호사는 “지난해 최씨 사법처리과정에서 ‘대한생명의 외자유치 성사’를 명분으로 최씨를 선처해 달라는 말이 여러 경로로 당시 김 검찰총장에게 전달되었다”고 전했다.
그러면서도 김씨는 청탁자에 대해 지금은 밝힐 때가 아니라고 했다는 것이다. 그는 “언젠가 국민이 열린 마음으로 나의 진심을 알아줄 수 있는 때가 오면 말할 수도 있다”는 입장이라고 한다. 그가 변호사를 앞세워 돌연 ‘선처 부탁’이 많았다고 털어놓은 것은 그 나름의 ‘결백과 억울함’을 강조하려 한것으로 추정할 수 있겠다. 그러나 청탁자의 이름을 가린 채 ‘봐주라고 부탁했다’는 식으로 말하는 것은 이해할 수 없다. 가뜩이나 작고 사소한 의혹들이 겹쳐 파국을 불러온 이 시점에, 또 하나의 의혹의 불씨를 던지는 것이기 때문이다.
김씨가 기왕 로비의 존재를 털어놓은 바엔 당연히 그 주체들도 누구인지 밝혀야 당당하고 사리에 맞다. 고급 옷로비가 김씨의 주장대로 ‘실패한 로비’라고 하더라도 그것이 오늘날까지 온 국민을 어지럽게 하고 나라를 들끓게 하는 현안이 되고 있는 이유는 애당초 있는 그대로 밝히고 털어놓았으면 될 일을 가리고 호도한데 있다. 그런데 이제와서 또 하나의 의혹, 그것도 검찰총장을 향해 청탁한 사람들이 있었다고 하면서 정작 그들이 누구인지 말하지 않겠다는 것은 참으로 이상한 처신이다.
나아가 김씨는 지난해6월 ‘최순영씨 외화 도피’사건을 맡고 있던 서울지검 특수부가 중간 발표를 한 후 수사를 유보한 경위에 대해서도 확실하게 소명해야 한다. 당시의 특수부장은 “당시 서울지검장이 외자유치 노력에 수사가 방해가 돼서는 안된다는 이유로 수사종결을 유보하자고 해 수용했다. 지검장은 총장과도 협의했을 것으로 생각한다”고 말하고 있다. 김씨는 당시 총장으로서 어떤 판단에 따라 서울지검장과 무슨 내용을 협의했는지 등을 밝혀야 할 단계에 와 있는 것이다.
최순영씨는 특히 지난해 봄 검찰 조사를 받기 시작해 구속될 때까지 10달간 약53억원을 접대비 기밀비 등으로 쓴 것으로 되어있다. 이 기간중에 최씨가 고교 대학 인맥, 그리고 교회계통 인맥을 총동원하고 박시언씨를 기용해 정관계에 로비를 펼친 것으로 드러나 53억원의 사용처에 의혹이 쏠리고 있다. 김태정씨가 말하는 숱한 청탁자들은 이 돈의 사용처와 어떤 관계가 있는지 반드시 규명되어야 할 대목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