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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슈추적]"일자리 주겠다" 속인뒤 여권챙겨 줄행랑

입력 | 1999-12-02 19:47:00


최근 경기회복과 해외여행 대중화에 따라 여권발급이 크게 늘어나면서 여권을 노린 범죄가 기승을 부리고 있다. 한국여권은 해외의 ‘범죄자’들에게 상당히 고가에 팔리기 때문이다. 최근엔 취업을 미끼로 사람들을 끌어모은 뒤 이들로부터 여권을 챙겨 달아나는 신종 사기범죄까지 등장해 경찰이 수사에 나섰다.

▼취업미끼 신종사기▼

일자리에 ‘목마른’ 구직자들은 신종사기단의 가장 좋은 먹이감. 사기단들은 유령회사를 차린 뒤 생활정보지에 광고를 내고 이를 보고 찾아온 사람들로부터 이력서 등 취업원서와 여권 원본을 함께 받고는 이를 챙겨 달아나 취업의 꿈에 부푼 구직자들을 두번 울리고 있다.

신모씨(27·서울 은평구 신사동)는 지난달말 생활정보지의 구인광고를 보고 서울 구로구에 있는 D교역을 찾았다.

신씨가 이력서를 제출하자 D교역의 사원으로 보이는 2명이 “우리는 중국과 농수산물을 거래하는 무역회사인데 현지에서 통관업무를 하려면 여권을 제출해야 한다”며 여권 제출을 요구했다. 신씨는 취업 기회를 놓치지 않으려고 어쩔 수 없이 여권을 제출했다. 일주일 뒤 이들은 잠적했다.

▼사기단 실태와 피해규모▼

구직자들의 처지를 악용한 여권사기는 최근 한달 사이에 서울과 대전에서 잇따라 여러 건이 발생했다. 이로 인한 피해자만 100여명. 그러나 분실신고를 하지 않은 사람들까지 합칠 경우 피해자는 훨씬 많을 것으로 추정된다.

외교통상부에 따르면 올해 10월까지 여권 신규발급건수는 129만여건으로 지난해 91만건보다 크게 늘었다.

그러나 여권분실건수 또한 지난해의 3만9000여건에서 4만500여건으로 늘어났다.

외교통상부와 경찰에 따르면 사기(또는 분실)를 통해 유출된 여권 대부분이 기소중지자에게 팔리거나 중국과 동남아시아 등지로 고가에 팔려나가 국내 밀입국 등 범죄에 이용된다는 것. ▼경찰수사▼

현재 취업을 미끼로 구직자들의 여권을 노린 사기범죄가 적발된 경우는 2건에 불과하다. 그러나 드러나지 않은 사기단과 유사범죄조직까지 합칠 경우 3∼10개에 이를 것으로 추정된다. 이들 사기단은 범죄를 치밀하게 준비하고 실행에 옮기기 때문에 경찰이 수사 한달을 넘기고 있지만 별 단서를 찾지 못하고 있다.

경찰에 따르면 이들 사기단은 사무실을 임대하면서 가명으로 계약을 한데다 수시로 장소를 옮겨가며 사기행각을 벌인 뒤 아무런 흔적도 남기지 않고 바로 잠적한다는 것. 결국 피해자의 진술에 의존해 수사중이지만 이마저 쉽지 않다는 게 경찰측 설명이다. 경찰은 일단 이들 사기단이 다시 범죄에 나설 경우 생활정보지를 이용할 것이라고 판단, 매일 생활정보지의 취업광고를 확인하는 수준에서 수사를 계속하고 있다.

경찰청의 한 관계자는 “전국적으로 몇개의 사기단이 활동중인지, 이들이 거대조직의 일부인지 등은 아직 알 수 없다”며 “그러나 여권발급기관과 협력, 이들을 잡기 위해 최선의 노력을 기울이고 있다”고 말했다.

〈김상훈기자〉corekim@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