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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것만은 버리고가자]최혜실/'틀깨면 비정상' 잣대 그만

입력 | 1999-12-06 19:44:00


한국의 아파트 구조는 정말 똑같다. 평형에 따라 동일한 구조로 집을 짓는데다가 무엇보다도 주부들이 경쟁적으로 자기 집을 옆집처럼 치장하고 있다. 옆집 장판지의 자연목 무늬가 좋다 싶으면 자기도 같은 장판지를 깔고 아랫집 마블 무늬 욕조를 보는 순간 자기 집을 인테리어할 때 참고할 모델로 삼는다. 같은 줄에 사는 주부들끼리 커피를 마시면서도 대개가 둘이며 그 평수대에서는 나이도 비슷한 자기 아이들의 학교 담임, 학원 그리고 저녁에 먹을 반찬거리에 대해 정보를 나누며 서로의 동질성을 확인한다. 아니 서로가 닮아 있다는 사실에 안도하며 공감의 장을 확보한다. 간혹 튀는 이웃이 있으면 따돌리고 흉을 보는 과정에서 서로의 결속을 공고히 한다.

딸이 대학교 4학년 때 결혼하겠다고 하면 기함을 할 부모도 딸이 대학을 졸업한 후 2년만 지나면 조바심나는 마음이고 스물여덟이 지나면 초조함으로 바뀌며 서른을 넘어설 때는 대명천지에 얼굴을 들고 다닐 수 없는 경지에 이른다. 스물다섯에서 스물여덟, 이 짧은 3년의 기간이 ‘정상적’인 한국여성의 혼인 적령기인 것이다. 그러니 마흔이 되도록 결혼 못한 여자는 용모나 성격에 문제가 있는 것이며 사실 이 소리 듣기 겁나서 결혼한다는 여자들도 많다. 결혼을 했다고 해서 ‘정상’의 대열에 바로 진입한 것은 아니다. 하나는 너무 적고 셋은 너무 많다. 아이는 딱 둘이 적당하다.

한국의 어떤 대학, 어떤 과는 많은 경우 수능 성적이 같은 학생들이 가는 곳이다. 같은 성적을 받은 학생들이 모여서 과단위의 정교한 학연의 고리를 이루고 학문의 전통은 이어진다. 끈끈한 사제의 정, 선후배간의 미덕이 곧 학문이요, 실력인 것이다. 이 상황에서 대학원에서 전공을 바꾸는 사람, 학제간 연구를 시도하는 사람은 ‘왕따’를 자초하는 어리석은 사람들이다. 주어진 틀 안에서 적응하며 살아가는 사람이 성실하고 한결같은, 그리고 안전한 사람이다.

어떤 현상을 이분법으로 구분하면 참 논리정연해지고 안정적이 된다. 남자와 여자, 어른과 아이, 본교 출신과 타교 출신, 자연과학과 인문과학, 영남 출신과 호남 출신…그러나 이렇게 선명하게 사물을 구분하다 보면 그 사이에 있거나 경계에 있는 것들은 무시당하거나 따돌림받는다. 때문에 될 수 있으면 구분된 것의 틀 안에서 몸을 사리고 있는 것이 우리의 삶을 편안하게 하는 방법이다.

누구나 날 때부터, 그리고 젊은 시절에 형성된 몇가지 틀에 속해 있다. 예를 들면 여자, 엄마, 영남 출신, 무슨 대학 무슨 과 출신, 교수…여자는 여자에 맞는 역할이, 엄마면 엄마에 맞는 역할이, 그리고 지역에 따른 지방색이 정해져 있다. 이런 틀이 형성되면 그 때부터는 나의 노력과 관련없이 내 인생은 알아서 흐르게 된다. 더구나 한국은 안분지족이 신중함 겸손함이 되는 사회이다. 이 마당에 굳이 힘들여 틀을 깨려고 할 필요가 없는 것이다. 여기에 발전이 있을 수 없다. 땅도 아직 주인이 없고, 장차 무엇이 될지 모르는 상황에서 빠르게 개척되는 것이다.

틀 속의 삶을 버리고 가자. 구분과 배제, 그리고 안정을 버리고 가자. 경계를 터놓고 가로지르며 소통하는 행위는 겉으로 볼 때 혼란스럽고 무책임하며 위험해 보일 수도 있다. 그러나 자기 책임만 뒷받침된다면 일탈이야말로 기존의 틀을 부수고 새로운 경지를 개척하기 위해 필수적인 것이다.

최혜실(한국과학기술원 인문사회과학부 교수)

*다음회 필자는 경제학자 정운찬씨(서울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