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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이 라이프 마이 스타일]국내 유일의 카운터테너 이철수씨

입력 | 1999-12-07 18:29:00


▼이철수▼

난 여성음색을 가진 남성가수다. 투박하고 텁텁하게 생긴 아저씨에게서 가늘고 고운 음이 나는 게 낯설은 것도 당연한 일. 이제껏 남성의 간들어진 목소리는 거세(去勢)한 남자의 ‘대명사’였으니….

96년 대구에서 국내 최초로 열린 카운터테너 독창회를 떠올리면 지금도 얼굴이 달아오른다. 첫 곡 카치니의 ‘아마릴리, 내사랑’의 첫 소절이 채 끝나기 전, 공연장은 술렁댔다. 앞자리에서 앉아 아예 ‘키득키득’하는 모습도 보였다. 도저히 안되겠다 싶어 노래를 멈췄다.

“카운터테너는 이상한 소리가 아닙니다. 정상적 성인 남성이라면 연습을 통해 누구나 낼 수 있는 소리예요. 외국에선 이미 보편화돼 있어요.”

장내는 곧 평온을 되찾았지만 후반부에 테너곡을 불러 내가‘완벽한 남자’임을 증명해야 했다.

▼편견과 실재▼

사실 내가 카운터테너임을 공언한 뒤 맘고생이 심한 건 아내다. 내게 물어보면 될 것을 친지들이 아내에게만 살짝 “저 친구, 이상없죠?”라며 의혹의 눈길을 보내는 거다.

물론 나도 쉽지만은 않았다. 2년 전 대학에서 ‘음악의 이해’ 강의를 마친 뒤 “궁금한 내용 있으면 질문하세요”했더니 한 여학생이 경계하는 눈빛으로 묻는 게 아닌가. “저, 자녀는 있나요?”

아, 나를 게이 쯤으로 여긴 것이다….아들 윤(13)과 딸 성은(12)이가 알게 된다면 참 민망한 일이다.

9월 국내 최초로 카운터테너 음반을 냈을 때 경북대 은사도 “징그럽다”는 게 첫 반응이었다.

아무래도 영화 ‘파리넬리’ 때문인 것 같다.사실 난, 파리넬리완 전혀 다르다. 아무리 좋은 소리를 얻을 수 있다해도 거세가 전제조건이라면 절대 선택하지 않았을 거다. 카운터테너는 테너의 고음발성을 내기 위해 가성을 사용하다 내 가능성을 인정해준 은사의 도움으로 91년부터 시작한 것인데.

▼꼴찌에게 갈채를▼

중학시절까지 성적은 거의 꼴찌를 맴돌았다. 또 급우들의 코피를 터뜨려 곧잘 “부모님 모시고 와”라는 말을 들어야했다. 그런 말썽꾸러기에게 중3 때 아버님이 암으로 돌아가시자 다른 세상의 문이 열었다. 대학을 포기하고 야간고교에 다니며 낮에는 파출소에서 청소와 심부름을 했다. 인생이란 참 묘한 것이다. 결국 그 야간고교 덕분에 성악가가 될 수 있었으니….

아, 고마우신 김용환 음악선생님. 1학기 중간고사 실기시험에서 내 실력을 간파한 뒤 3년 동안 토요일마다 한 시간씩 개인레슨으로 대학을 ‘꿈꿀 수’ 있게 해주셨다. 결국 군대(군악대)와 남의 집 벨도 누르지 못했던 책외판원시절 등을 거쳐 82년 스물일곱의 나이로 경북대 예술대에 입학했다.

▼노래가 운명을 결정한다▼

좋은 테너는 힘차고 우렁차게 소리를 내질러야 한다. 파바로티는 ‘세상을 호령하듯’ 가슴을 쫘악 펴고 온몸에서 소리를 모아 뿜어내지 않는가.

그러나 카운터테너는 다르다. 서정적인 음색을 위해 최대한 ‘조심조심’ 절제한다. 가슴과 목에 최대한 힘을 빼는 것은 물론 상체를 조금 굽히고 순차적이고 부드러운 음의 연결을 위해 몸짓도 부드러워지는 거다.

사실 즐겨 부르는 노래는 생각과 생활을, 그리하여 인생까지 송두리채 바꿔버린다는 게 내 믿음이다. 마치 군인이 군가를 부르며 씩씩한 군인이 되고 기독교인이 찬송을 하며 신심을 기르듯…. 그래서 나는 영혼을 울리는 맑은 소리를 내기로 결심했다. 카운터테너가 내게는 일종의 ‘사회정화운동’인 셈이다.

〈정리〓이나연기자〉larosa@donga.com

▼카운터테너 이철수씨와 일문일답▼

▽Q(기자)〓왜 카운터테너를 선택했나요?

▽A(이씨)〓국내에만도 수천명의 테너가 이름도 없이 사라져갑니다. 전 국내 최초의 카운터테너로 기억될 것입니다. 또 카운터테너가 주목받는 것이 세계적 추세이기도 합니다.

▽Q〓연습방법과 연습시간은?

▽A〓유명한 카운터테너의 CD를 듣고 따라합니다. 초기엔 모방이 최선의 학습입니다. 처음엔 1시간만 연습해도 쉰 목소리가 나 연습을 계속할 수 없었습니다. 이젠 테너연습은 하지 않고 카운터테너만 매일 3∼4시간 연습합니다.

▽Q〓가성을 많이 쓰면 후두암에 걸릴 위험이 크다는데?

▽A〓담배를 피우는 것보다는 위험이 적습니다.

▽Q〓카운터테너를 시작한 뒤 삶이나 성격에서 달라진 점은 없는지요?

▽A〓달라진 점이 있다고 생각하는 것이 더 이상스럽습니다.

▽Q〓카운터테너로서 아직은 부족한 점이 많다는 평가인데….

▽A〓첫 공연 때를 생각하면 지금도 부끄럽습니다. 하지만 석달 전보다도 소리가 완전히 달라졌다고 생각합니다.

▼카운터테너란 카스트라토와는 전혀 달라▼

국내에 잘 알려진 카운터테너 곡은 현대자동차 ‘베르나’의 광고에 사용된 배경음악. 독일의 안드레아스 숄이 작곡해 부른 ‘백합처럼 하얀’이다.

흔히 남성이 여성의 목소리로 노래할 땐 영화 ‘파리넬리’에 등장했던 카스트라토를 떠올리지만 카스트라토와 카운터테너는 전혀 다르다.

카스트라토란 6∼8세의 남자아이를 거세해 변성기를 거치지 않게 하는 것. 성인이 된 뒤에도 여성 소프라노처럼 진성(眞聲)으로 노래한다. 그러나 카운터테너는 정상적으로 변성을 거친 남성이 가성(假聲)만을 이용해 노래하는 것이다. 따라서 변성된 음성과 가성을 둘 다 낼 수 있다. 카스트라토가 ‘피아노’ 소리처럼 경쾌하다면 카운터테너는 ‘파이프오르간’처럼 공명(共鳴)한다.

미국의 권위있는 음악사전인 ‘Grove Dictionary’에 따르면 카운터테너는 14세기 단성(單聲)음악에서 다성(多聲)음악으로 발전할 때 테너(기본음)의 바로 위 성부(聲部)로 처음 생겨났다. 즉 기본음에 ‘대한(counter)’ 음이라는 뜻.

이에 비해 카스트라토는 교회에선 남성만이 노래할 수 있도록 허락한 카톨릭교회의 전통 때문에 생겨났다. 17세기에 처음 등장한 이후 200여년 동안 전성기를 맞은 반면 카운터테너는 자연도태됐다. 그러다 20세기 초 로마카톨릭 교황청이 카스트라토를 공식 금지시킨 뒤 카운터테너에 대한 관심이 다시 높아졌다.

국내에서도 19일 방한하는 일본의 요시카즈 메라의 ‘로망스’가 11월까지 약 2만여장이 팔려 클래식분야 단독 아이템으로는 7위를 차지(미디어신나라 집계)할 만큼 고정팬이 급속히 확산되고 있다.

〈이나연기자〉larosa@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