크면 좀처럼 망하지 않는다는 대마불사(大馬不死)의 신화가 한보 기아그룹 해체와 수개의 30대 재벌 워크아웃으로 깨어졌다. 철옹성으로 보이던 5대재벌 가운데 대우가 정리되자 초대마불사(超大馬不死)의 신화마저 깨졌다. 은행불사(銀行不死)의 신화도 이미 사라졌다. 모두 외환위기와 IMF 구제금융이 가져다 준 변화다. 문제는 이러한 변화가 일회성으로 그치지 않고 기업과 정부의 행동양식 속에 얼마나 체화되었는가이다.
한국경제는 지난 40년간 무리한 외형적 성장과정에서 10년 주기로 경제위기를 겪어 왔다. 60년대 말의 부실기업 양산, 70년대 후반의 중화학공업 중복 과잉투자, 80년대 후반의 빈부간 불균형 그리고 대중소기업간의 불균형은 97년 말의 외환위기보다 결코 가벼운 것이 아니었다. 그러나 매번 정부는 시장에서 적자생존(適者生存)의 원리를 무시한 채 죽어야 할 기업을 되살리는 미봉책으로 문제를 해결해 왔다. 그것이 화근이었다.
어떤 어려움도 극복될 듯이 보였고 미래는 항상 밝게만 보였다.
사실 따지고 보면 한국경제는 무리한 팽창―위기―미봉적 위기극복―낙관―무리한 팽창―위기… 의 연속이었다. 이러한 악순환의 원인은 과잉투자로 인한 과잉시설 그리고 그 결과로서의 현금흐름 악화였다. 이러한 과잉투자의 원인은 어디서 찾을 수 있을까.
첫째는 기업들의 지나친 ‘나도’주의(me―too―ism)다. 맨주먹 내친구도 가발사업으로 성공했는데 난들 못할 것이 무엇이냐, 소비재 업체가 반도체에서 성공했다면 생산재 업체인 우리는 더 잘할 것 아니냐, 건설판에서 성공한 이가 자동차시장을 장악했다면 인재제일의 우리가 못할 리가 있겠는가 등. 꼬리에 꼬리를 문 나도주의가 중복 과잉투자를 불러일으켰다. 특히 상위 재벌들의 선두유지를 위한 나도주의식 투자는 경제위기를 초래한 주된 요인이 되었다.
둘째, 허황된 숫자로 미래를 장밋빛으로 그려댄 정부도 과잉투자 책임에서 벗어날 수 없다. 정부의 주문을 받은 한 국책연구소는 70년대 중반 한국이 90년대 초반에는 영국을 따라잡을 것이라며 유신체제를 거들더니 96년 총선을 맞이해서는 2010년에는 영국을 밀치고 G7에 진입할 것이라고 호들갑을 떨었다. 한 영국인이 한국은 영국을 어떻게 두 번이나 따라잡느냐고 빈정댄 웃지 못할 해프닝이었다.
지나친 나도주의와 허황된 낙관주의는 예외없이 경제적 거품과 그로 인한 경제적 파탄을 초래한 것이 자본주의의 역사적 교훈이다. 17세기 네덜란드의 튤립열풍으로부터 시작해서 18세기 프랑스의 미시시피 버블, 영국의 남해 버블, 1920년대 미국의 플로리다 토지 붐, 대공황 직전의 주식 붐, 80년대 일본의 거품경제, 그리고 94년의 멕시코 경제위기에 이르기까지 수많은 거품들이 놀랄만큼 비슷한 모습으로 자본주의 역사를 장식해왔다. 한국의 외환위기도 거품에서 발생했음은 물론이다.
그런데 지금 한국경제에는 또다시 나도주의와 낙관주의가 창궐하고 있다. 재벌들이 내세운 21세기 주력업종은 어쩌면 그렇게도 천편일률적인가. 정보통신 인터넷 바이오를 내걸지 않으면 기업축에 들지도 못한다. 이에 화답하듯 정부는 외환위기 극복을 공식 선언하면서 집권 후반기의 경제 청사진을 핑크빛 숫자로 장식하였다. 새로운 거품이 잉태되고 있는 것이다.
다가올 21세기에는 내가 남보다 잘 할 수 있는 것만 하는 기업풍토를 만들어 보자. 그리고 실현가능한 꿈만 국민에게 제시하는 정치풍토를 만들어 보자.
정운찬(서울대교수·경제학)
*다음회 필자는 연세대 국문학교 교수이며 소설가인 마광수씨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