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회의원 총선거가 다섯달 앞으로 다가왔는데도 선거법은 어떻게 정해질지 오리무중이다. 여야는 상대 정파의 속셈과 눈치나 살피고, 정략냄새가 물씬 풍기는 술수에 급급하는 인상이다. 우선 공동여당이 내놓은 복합선거구제라는 것부터가 아주 작위적으로 보인다. 도시에서는 선거구마다 2∼4인을 뽑는 중선거구제를, 농촌에서는 한명씩 뽑는 현행 소선거구제로 한다는 방식이다.
이것은 일찌감치 내놓았다가 버린 카드다. 편법적인 측면이 엿보이고 위헌소지마저 있다는 지적이 있었다. 그런데도 다시 끄집어 낸 이유는 국민회의와 자민련의 공동정권측 이해관계 때문이라고 한다. 자민련의 영남권 의원들이 주장해온 중선거구제가 벽에 부닥침으로써 이것을 복합선거구 형식으로 담아 보려는 취지로 해석되고 있다.
야당의 반대는 차치하더라도, 국민 앞에 당당하지도 않고 작위적인 냄새가 나는 선거구획정 방식을 정파의 이익 때문에 꺼냈다가 무르고, 다시 꺼내는 것은 우스운 일이다. 이른바 ‘이중 등록제’라는 것도 마찬가지로 공동정권의 이해관계가 맞물려 있는 방책으로 볼 수 있다. 한 사람이 지역구와 비례대표 후보로 동시에 등록할 수 있게 해서 지역에서 떨어져도 정당지지분으로 당선시키는 안전판을 만든다는 아이디어다.
물론 독일 같은 나라에서 성공적으로 시행된다는 논리도 있고, 우리나라처럼 지역당이 지배하는 현실을 완충하기 위해서는 그나마 영남에서도 여당의원이, 호남에서도 야당의원이 나올 수 있도록 하는 방안이라는 것을 모르지는 않는다. 그러나 이러한 패자(敗者)부활 방식은 어쩐지 낯설고 약점도 숱하게 제기된다.
무엇보다 이중등록 후보들이 신인몫의 후보자리를 앗아간다는데 있다. 가뜩이나 중진 위주의 ‘낡은 정치’ ‘물고인 정치판’이 비판받고 불신당하는 터에 그 중진들을 국회에 남기기 위한 안전판으로 작용하고 ‘새 피’들의 진출을 제약할 것이기 때문이다. 공천을 둘러싼 충성경쟁도 더 심해져 정당의 민주화, 인적 물갈이에도 역으로 작용할 가능성이 높다.
야당인 한나라당도 선거법 협상을 하면서 공동정권의 틈새만을 지나치게 의식하거나 여권(與圈)신당을 좌절시키겠다는 전략에서 벗어나야 한다. 상대 정파 아닌 국민을 쳐다보고 역사를 의식하는 ‘최대의석의 야당’다운 자세로 주체적으로 정책대안과 협상안을 내야 한다. 여야 모두 작위적이 아닌 대경대도(大經大道)의 정치를 보여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