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인공이 어느날 잠을 깨보니 자신이 큰 벌레로 변해 있었다. 가족들은 그 벌레가 누군지 안다. 그러나 그를 도와주기는커녕 박해함으로써 그는 결국 죽는다. 남은 가족들은 편안한 마음으로 장례 이야기를 한다.(카프카의 ‘변신’, 98년 한양대 자연계 논술문제 제시문)
논술 문제의 제시문이 고전의 일부임은 이미 밝혔다. 제시문을 잘못 파악하면 답안의 방향이 잘못될 수밖에 없다. 그러나 수험생이 이해하지 못할 정도의 어려운 글은 나오지 않는다.
서울대는 지난해 논술시험을 마친 뒤 “제시문을 미리 읽지 않았더라도 내용을 이해하는 데 별 어려움이 없었을 것”이라고 밝혔다. 고전을 현재의 삶에 비춰 이해하는 것이 중요하다. 위의 제시문에서 현재 상황을 끌어내는 유추 과정을 다음과 같이 예시할 수 있다.
인간이 벌레로 변한 것은 아니다. 그 무엇에 대한 ‘상징’일 수 있다→어떤 경우에 인간이 벌레처럼 느껴질까→‘벌레같은 인간’이라는 욕이 있다.→주인공이 욕먹을 인간으로 보이진 않는다→본인의 잘못과 관계없이 ‘벌레같은 인간’이 된 것이다→아! ‘사회적 모순’과 관련이 있을 수 있다→‘IMF시대의 실직 가장’이 다른 사람에게 ‘벌레같은 인간’으로 여겨지는 경우도 있을 수 있다.
조각가 피그말리온은 자신이 만든 여자 조각상에 반한다. 그는 신(神)에게 조각상을 사람이 되게 해달라고 간절히 기도한다. 마침내 그의 소원은 이루어지고 그는 사람이 된 조각상과 결혼한다.(그리스신화, 98년 연세대 자연계 논술문제 제시문)
이 제시문의 주제를 ‘예술의 본질에 대한 고찰’로 보면 방향을 잘못 잡은 것이다. 제시문에서 ‘외모에만 집착하는 현대인의 모습’을 찾을 수도 있다. 하지만 ‘불가능한 목표도 된다는 확신을 갖고 노력하면 성공할 수 있다’는 착상이 더 나은 것으로 보인다. ‘신’을 ‘컴퓨터’로 해석해 ‘가상현실에 몰두하는 현대인’을 생각하는 것도 좋다.
고전 속의 상황과 비슷한 현대의 상황을 찾는 것은 그리 어렵지 않다. 춘향과 이도령의 결혼은 영화 ‘프리티 우먼’(Pretty Woman)과 비슷하지 않은가. 로미오와 줄리엣 이야기는 지금 우리 이웃에도 있다. 박지원의 ‘호질(虎叱)’에 나오는 ‘양반’같은 사람이 요즘 얼마나 많은가.
또 제시문을 분석할 때 명심할 것은 자신의 주장이 제시문에 근거한 것임을 보여주어야 한다는 점이다. 그러나 물음에 ‘제시문을 참고하여…’라는 대목이 있다면 크게 개의치 않아도 된다.
‘토끼전’의 ‘토끼’와 ‘봄봄’의 ‘나’와 ‘장인’의 삶의 방식을 평가하고 학생 자신이 추구하는 인간상을 제시하시오.(99년 한국외국어대 논술문제)
수험생은 이런 문제에 자신이 생각하는 바람직한 인간상만을 제시해서 감점을 당하는 경우가 많다. ‘토끼’ ‘나’ ‘장인’의 특성을 분석하고 그에 대한 평가를 바탕으로 ‘토끼 50%+나 50%’ 또는 ‘토끼 30%+나 40%+장인 30%’라는 방식으로 혼합해 바람직한 인간상을 제기하는 것이 옳은 방법이다.
정선학(중앙교육진흥연구소 평가연구실 논술팀장)
ibe2000@edutopi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