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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학준 칼럼]권좌에 오르면 왜 잘못하는가

입력 | 1999-12-10 19:52:00


보통 사람들의 상식으로는, 권력의 중심기관들에 들어선 국가기관의 요인들은 정치를 잘 할 것처럼 보인다. 모든 정보와 자료가 그들에게 집중될 것이고, 국내 최고의 전문가들로부터 건의와 충고를 받을 터이며, 더구나 그들에게만 독점적으로 주어진 정치적 자원들을 충분히 활용할 수 있을 것이므로 잘못하려고 해도 잘못할 수 없을 것이라는 생각이 앞선다. 그런데 권좌에 오른 통치엘리트들은 어찌하여 유치한 일들을 저지르며 표 떨어지는 짓거리만 골라 하고 심지어 범죄하기에 이르는가? 역대 정권의 과오를 수없이 겪으면서 품었던 이 의문을, DJP 공동정권 역시 본질적으로 비슷한 잘못을 저지르고 있음을 보면서 다시 갖게 된다.

◆권력욕에 절제못해

필자로서는 무엇보다 절제가 따르지 않은 권력욕을 꼽는다. “소인이 자리를 얻으면 거기에 연연해 결코 물러나려 하지 않는다”는 공자의 경고에 자신을 맞추려는 듯, 권좌에 오른 사람들은 될 수만 있다면 그 자리를 하루라도 더 유지하고 싶어하며, 한 걸음 더 나아가 대대로 지키고 싶어한다. 그 욕심으로부터 정도에 어긋나는 무리한 일들을 만들어낸다. 다음 국회의원 총선에서, 다음 대통령선거에서 자신들의 당이 꼭 이겨야 한다는 집념에 사로잡혀 정치자금을 불법적으로 끌어모으거나 정치공작을 하기도 한다. 가장 쉽게는 제도를 이렇게도 고쳐보고 저렇게도 만들어보려 한다. 물론 정치인들의 권력욕을 나무랄 수만은 없다. 그러나 속이 너무 뻔히 보일 정도로 장난을 하는 느낌을 줄 때 국민의 빈축을 사게 마련인데, 요즘 정부와 여당이 신당을 만들고 있는 모습이며 자민련과 합당을 추진하는 모습, 그리고 선거제도를 복잡하게 구상하는 모습 등은 ‘작위(作爲)의 정치’가 심하다는 인상을 주기에 충분하다. 여기서 우리는 “한번 붙잡은 것에서 손을 떼라. 그렇게 하는 사람이 대장부다”라는 백범 김구의 가르침을 되새기게 된다. 한번 붙잡은 것에 연연해 아둥바둥하지 않고 과감히 손을 툭 털 때 오히려 살 길이 열린다는 뜻으로, 마음을 비우고 이것저것 잡스럽게 일을 꾸미지 않는 ‘부작위의 정치’를 할 때, 국민의 신뢰는 늘어날 것이다.

권좌에 오른 사람들이 잘못을 저지르게 되는 두번째 이유는 정신적인 해이에 있다. 높은 자리에 앉게 되면 대체로 세상만사가 쉽게 생각된다. 자신의 말 한 마디에 수하직원들은 물론 전국의 하부기관들이 일사불란하게 움직여주는 것 같은 상황에 익숙하게 되어 국사의 많은 부분들을 안이하게 여기게 된다.

◆독선빠져 현실 오판

아랫사람들의 ‘칭송’과 아첨, 게다가 인의 장막과 왜곡보고 같은 것은 더더욱 긴장을 완화시킨다. 비판세력의 문제제기에 대해서는 ‘습관적 행태’정도로 무시하거나, 돈이나 자리를 주면 봉쇄나 수습이 가능하다는 공작적 차원에서 접근하게 된다. 대통령의 정신적 해이를 재촉시킬 수 있는 일들 가운데 하나가 해외의 정상외교이다. 그것은 얼마나 화려한 의식과 거창한 수사를 동반하는가. 필자는 몇몇 역대 대통령들로부터 자신들이 해외의 정상외교를 경험하면서 비로소 대통령이 된 맛을 만끽했다는 솔직한 고백을 들었었는데, 김대중대통령도 예외가 아닐 것이다. 대통령은 아니지만 김종필총리가 숱한 비난을 받으면서도 자주 외유의 길에 오르는 까닭도 비슷하리라.

권좌에 오른 사람들이 잘못을 저지르게 되는 세번째 이유는 고정관념 또는 제한된 시야에 있다. 그 자리에 오를 때까지 일방적으로 형성된 인식과 가치관 또는 지식세계에 대한 재평가와 재교육 없이 국정에 임할 때 많은 실수가 빚어지는 법이다. 여당만 하던 사람들이나 야당만 하던 사람들이 갖는 편견이나 독선이 현실진단을 그르치게 만들고 엉뚱한 정책을 추진하게 만든다는 뜻이다. 더구나 패거리정치를 하는 경우 고정관념의 집단화로 말미암아 방향의 재조정이 어려워진다. 여기서 우리는 균형감각의 중요성을 새삼스레 깨닫게 된다.

미국의 역대 대통령들을 비교연구한 더글러스 브링클리 교수는 “대통령이 된다는 것은 전직 대통령이 되기 위한 첫 단계이다”라는 평범한 명언을 남겼다. 민주주의 국가에서 어느 누구도 권좌에 오래 머물 수 없다. 어디 대통령뿐인가. 권좌에 있는 사람들은 자신이 반드시 그 자리를 떠나게 되고 그리하여 전직자(前職者)가 된다는 사실을 명심하며 일해야 한다.

김학준(본사 편집논설고문·인천대총장)

hak@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