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개 숙이면
수타사 계곡 잔물결이 보인다
물은 빼곡한 숲에서 산수유 피우다가 왔다
물결 사이를 유령처럼 떠도는 치어들
그들은 어디서 왔을까
햇살 닿자 강바닥에 그림자 기어가는 소리
그들은 물 아래 그림자가 낳았다
바람 불면 그림자 보러 가야지
갈 수 없는 강바닥, 물위를 건너는 햇살,
그림자로 자신을 또렷이 만들어낼 줄 아는 부유는 아름답다
바람 불면 그림자 만들러 가야지
―시집 ‘옛날 녹천으로 갔다’(창작과 비평사)에서
가을이 깊을 대로 깊으면 산이 하는 일은 제 몸에 품고 있는 물을 뿜어내는 일이라 한다. 물을 품고 겨울을 나려면 쉽게 얼고 춥디 춥기 때문에 물을 다 토해낸다고 한다. 가을 골짝에 물이 많은 까닭이 거기에 있고 그 물을 일컬어 추수(秋水)라 한다 들었다. 꼭 그 가을 물 앞에 앉아 있는 느낌을 주는 시다. 계곡에 가 본적 오래인데 꼭 계곡에 앉아 있는 것도 같다. 산수유 피던 봄, 진초록의 여름, 만산홍엽의 가을을 다 보내고…. 지금 저 산, 온 몸의 물을 다 퍼낸 바짝 마른 저 산, 긴 겨울을 견디고 있다.
신경숙(작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