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 국가 사회나 맞부딪치는 이해(利害)관계를 완벽하게 조절할 방도는 없다. 이를테면 정부와 기업이, 사용자와 노동자가, 교원과 학부모―학생이 각기 어긋나는 목표와 요구사항으로 부딪치는 것은 꼭 우리만의 사정은 아닐 것이다. 그래서 이해상충을 조절하는 ‘원칙’이나 룰, 약속을 만들고 그것을 바탕으로 서로 공존 공영을 모색하는 것이 아닌가.
시위와 집회의 자유라는 것도 그렇다. 사회적 약자가 자신의 권익을 실현하는 힘이 미약하기 때문에 법으로 보장해준 권리인 것이다. 그러나 그것은 법 테두리안의 평화로운 의사표시에 한한다. 그런 의미에서 농민 노동자 및 학생 일부의 10일 서울도심 폭력시위는 법과 원칙에 대한 도전이다. 경찰이 시위허용선으로 획정한 이른바 폴리스 라인을 넘어 차도까지 점거하고 경찰관들을 향해 몽둥이를 휘두르고 인분을 뿌리며 폭력을 행사, 양측에서 숱한 부상자를 낸 것은 무엇으로도 정당화 될 수 없다.
요구사항이 제아무리 합당하고 절실한 것이라 하더라도 폭력적 생떼로 원칙을 무너뜨리려 해서는 안된다. 경찰이 폭력시위의 악순환을 되풀이하지 않는다는 목표로 최루탄 발사를 자제하는 마당에 구시대적 폭력시위 수법으로 나선다는 것은 일종의 자해(自害)일 수 있기에 안타깝기만 하다. 시위 집회의 자유를 향유하려면 그에 따른 질서유지 평화행동의 의무도 지켜야만 한다. 그것을 어기면 법에 따른 엄중한 책임을 물어야 한다는 것이 우리 모두가 정한 ‘원칙’이다.
원칙이 흔들려서는 안된다. 그런 점에서 노사갈등의 주요 쟁점이 되고 있는 노조전임자 임금지급 문제도 노사정위의 틀안에서 합의안을 도출하는 것이 순리요 원칙이다. 이 문제의 불씨는 노동계가 97년 개정된 ‘2002년부터 전임자 임금지급 금지’규정을 문제삼고 노동계를 의식한 정부와 정치권이 고개를 끄덕인데서 생겼다. 이제 선거철이 다가와 표를 의식할 수밖에 없는 정부와 정치권이 임기응변의 달래기식으로 처방한다면 그것은 원칙을 무너뜨리며 또다른 시비와 소란을 초래할 것이다.
교원정년 62세를 다시 63세로 늘리자는 자민련측의 논의도 선거를 겨냥한 ‘원칙’허물기만 같다. 공동정권을 자임하면서 그동안 학생과 학부모 등 ‘수요자’를 위한 교육개혁에 동의, 교원정년 단축에 찬성표를 던진게 언제인데, 그 잉크도 마르기 전에 표변이란 말인가. 개혁의 이름으로 원칙을 주장하며 수술에 앞장서던 측이 다시 표를 얻어보겠다고 입장을 바꾸며 갖가지 혼란을 자초하는 모습은 딱하기 만하다. 그것은 결코 미래를 내다보는 정치일 수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