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39년은 폴란드 발트3국(에스토니아 라트비아 리투아니아) 핀란드로 대표되는 북유럽 국가들에는 국가의 존망을 가름한 해였다.
그 해 8월23일 독일 외상 리벤트로프와 소련 외상 몰로토프의 비밀약정에 의해 이 국가들은 각기 독일과 소련으로 분할 또는 병합됐다. 이에 따라 히틀러는 9월 폴란드를 침공해 점령했고 스탈린은 동부 폴란드와 발트국가들을 쉽게 합병했다. 스탈린은 핀란드도 어려움없이 점령할 것으로 생각했다.
그해 11월30일부터 시작된 핀란드와 소련의 이른바 ‘겨울전쟁’은 소련의 예상을 뒤엎었다. 양국의 국경지대엔 눈이 많이 쌓였고 눈덮인 전선은 평소 크로스 컨트리 등 스키에 능한 핀란드인들의 게릴라전에 더없이 유리한 무대였다. 20만명 핀란드 군대의 결사항전도 무서운 복병이었다.
‘겨울전쟁’은 여러모로 다윗과 골리앗의 싸움이었다. 소련은 탱크로 밀고왔다. 핀란드인들은 눈속에 잠복해 있다가 탱크 엔진 속에 화염병을 던져 탱크를 정지시켰다.
핀란드인들은 산과 호수로 이어진 국경 지형을 이용해 소련군을 토막토막 차단시키는 게릴라 전법으로 이들을 섬멸하기도 했다. 이때 사용하던 화염병을 핀란드 병사들은 ‘몰로토프 칵테일’이라고 불렀다. 독일 외상 리벤트로프와 비밀협상을 벌여 핀란드를 송두리째 먹으려했던 몰로토프 소련 외상에 대한 증오감의 표현이었다.
칵테일이라 한 것은 병 속을 벤젠으로 채우고 그 위에 알코올을 넣었기 때문이다. 이듬해 2차세계대전이 본격화되면서 핀란드는 40∼44년 독일편에 서서 대소전(對蘇戰)을 전개해 독립을 지켰고 종전 무렵에는 대독(對獨) 선전포고를 함으로써 전범국가의 오명을 간신히 피할 수 있었다.
올해 11월30일 ‘겨울전쟁’ 발발 60주년을 기념하는 핀란드인들의 감회는 어느 때보다도 깊었다.
하마터면 핀란드는 39년 꼼짝없이 발트3국처럼 소련의 손아귀에 들어가 89년 소연방 붕괴시에나 독립을 되찾을 운명이었다. ‘몰로토프 칵테일’ 덕분에 위기를 모면한 셈이다. 40∼45년 제2차세계대전 중엔 독일이든 소련이든 어느 한편에 의해 국토가 유린될 지정학적 위치에 있었다.
용케도 국토의 ‘처녀성’을 지켜 유럽에선 스위스 스웨덴 두 중립국을 제외하고 교전 당사국으로서는 영국과 핀란드만이 유일하게 국토가 적군에 유린당하지 않았다. 2차대전 후 냉전체제에서는 동서 긴장완화에 외교 역량을 발휘해 냉전종식에 기여했다. 95년에는 EU회원국으로 가입해 올해 하반기 EU의장국 임무를 신명나게 수행했다.
60년이 지난 지금 핀란드는 유럽의 후발농업국에서 선진첨단공업국으로 변모했고 국가경쟁력도 3위로 일본 캐나다 프랑스 등 내로라 하는 나라의 연구소들이 산학관(産學官) 3위1체의 모델로 견학을 올 만큼 커졌다.
1812년 나폴레옹이 동장군(冬將軍) 때문에 모스크바 문턱에서 러시아정벌을 포기하고 퇴각했듯이 1939년 스탈린도 핀란드와의 ‘겨울전쟁’에서 핀란드 정복을 포기하고 물러섰다.
오늘날 인구 500만명에 불과한 핀란드가 크고 강하게 보이는 이유는 이들이 60년 전 소련을 격퇴했기 때문만은 아니다. 다른 국민에게서 흔히 볼 수 없는 공학마인드, 한 우물만을 파는 외곬정신, 자국의 교육제도 및 사회시스템에 대한 강한 자부심 등이 바탕을 이뤄 오늘날 세계첨단 기술공업국가를 일구었기 때문이다.
양동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