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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영화/쓰리 시즌]베트남人 굴곡진 삶 차분히 그려

입력 | 1999-12-16 19:27:00


할리우드 전쟁영화에서 미군의 총구 앞에나 놓여 있던 베트남인들이 영화 속에서 독자적인 제 목소리를 갖게 된 건, 베트남인인 트란 안 홍 감독의 ‘그린 파파야 향기’(93년)나 ‘씨클로’(95년)에 이르면서부터다.

올해 미국 선댄스 영화제에서 대상 관객상 촬영상을 휩쓴 ‘쓰리 시즌’도 베트남 출신 감독이 베트남을 무대로 만든 영화다. 굴곡진 인생을 사는 사람들의 힘겨운 나날을 비추지만 갈등이나 부조화조차 격렬하지 않게 조용한 톤으로 담아냈다.

배경은 ‘씨클로’처럼 현대의 베트남이지만, 감성은 베트남 전쟁 이전을 무대로 한 정적인 영화 ‘그린 파파야 향기’에 더 가깝다.

‘쓰리 시즌’에서는 신데렐라를 꿈꾸는 창녀와 그를 짝사랑하는 씨클로(자전거 인력거) 운전사, 딸을 찾으러 온 미군, 앵벌이 소년 등의 만남과 갈등이 주요 얼개를 이룬다. 이들이 만나고 엇갈리는 과정에는 서구화의 물결 앞에 속수무책인 베트남의 서글픈 풍경들이 배경그림처럼 묘사돼 있다.

베트남 출신 미국인인 26세의 토니 뷔 감독이 고향 땅에서 영화를 만들며 가장 갈구했던 건 ‘화해’였던 듯하다.

등장인물들은 잃어버린 것과 소중한 사람을 서로 되찾아주고, 각자의 꿈이 현실화되도록 도와주며 아픈 현실을 위무한다.

그러나 서정적인 이미지 창출에만 집중한 탓일까. 갈라진 것들이 서로 얼싸안는 결말은 아름답긴 해도, 공감을 불러일으키기엔 빈약하다. 아주 느린 전개 때문에 다소 지루해 하는 관객도 있을 듯하다. 하지만 수상시장 장면이나 창녀 렌이 베트남 전통의상을 입고 빨간 꽃이 가득 핀 나무 밑에 선 장면 등은 감탄이 나올 정도로 아름답다. 18일 개봉. 12세이상 관람가.

〈김희경기자〉susanna@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