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사대상자들은 대부분 현재진행형이거나 현실과 가깝게 느껴진 일들을 꼽았다. 1, 2위를 차지한 남북분단(37.5%)과 IMF외환위기(29.6%)는 모두 해결되지 못해 새천년까지 안고 가야 할 문제들이었다.
이 때문인지 우리 역사상 최초로 국토를 완전히 뺏겼던 ‘한일합방’은 3위(12.65%)에 머물렀고 ‘병자호란’이나 ‘몽고침략’처럼 나라의 주권을 뺏기다시피한 치욕의 역사는 10위 안에 들지도 못했다.
전세대에서 공통적으로 이 두 항목이 1, 2위로 꼽혔지만 학력과 소득수준에 따라 약간의 차이를 보였다. 대학 재학 이상의 고학력층과 월수입 151만∼200만원 층에서 남북분단을 1위로 꼽은 비율이 상대적으로 높았다. 또 고학력 30대 대도시거주자 고소득 층에서 가장 아쉬웠던 일을 한일합방(일제강점)이라고 응답한 경우가 상대적으로 많았다.
그러나 4위부터 10위까지는 대부분 오차한계(±3.10%) 안에 들어가 있기 때문에 큰 변별력을 보이지는 못했다. 다만 눈에 띄는 것은 12·12와 5·16성공에 위화도회군(9위)까지 포함하면 쿠데타와 관련된 사건이 10위 안에 3건이나 꼽혔다는 점이다.
이같은 조사결과는 ‘역사학자들’의 관점과는 상당히 다르다는 점에서 흥미를 끈다. 역사학자들은 조사결과에 대해 ‘당대의 현실감각을 중심으로 판단하는 경향을 그대로 드러낸 것’으로 분석했다.
조동걸(趙東杰)국민대명예교수는 “우리 역사상 국토를 통째로 빼앗긴 사건은 한일합방 외에는 없었다”며 “결국 남북분단도 한일합방에서 파급됐다는 점에 주목해야 한다”고 말했다.
성균관대 서중석(徐仲錫)교수는 “고려시대 몽고침략은 국토 유린과 문화재파괴 외에도 이후 70여년에 걸친 내정간섭으로 조상의 의식과 생활을 지배했다”고 말했다.
강만길(姜萬吉)고려대명예교수는 “병자호란은 임진왜란보다 피해규모나 전쟁기간은 짧았을지 모르나 ‘삼전도의 항복’이라는 치욕적인 패배로 끝났고 이후 두세기에 걸쳐 조선왕조가 청나라의 영향에 놓이게 됨으로써 근대화에도 뒤지게 만들었다”고 설명했다.
〈권재현기자〉confetti@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