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대중(金大中)대통령이 ‘DJ 정치자금’ 관련 발언으로 물의를 빚은 천용택(千容宅)국가정보원장의 사의를 반려한 것을 계기로 이 사건에 대한 여권의 대응기조는 일단 ‘버티기’로 가닥이 잡힌 것 같다.
그러나 이번 파동을 ‘일과성 해프닝’으로 진화하려는 여권 핵심부의 의도와 달리 국민회의 일각에서는 벌써 “총선 때까지 97년 대선자금 문제가 쟁점이슈가 될 것”이라는 관측이 나오고 있다. 그만큼 여진(餘震)이 간단치 않을 것이라는 얘기다.
김대통령도 사안을 처음 보고받고 매우 격노했다는 것. 그럼에도 불구하고 김대통령이 천원장을 경질하지 않은 것은 △한나라당도 세풍사건으로 정치자금문제에서 자유롭지 못한 만큼 이 사건을 계속 쟁점화하기 어려울 것이라는 판단과 △‘인재 풀’의 한계로 인한 후임 인선난 등이 고려됐다는 게 여권핵심관계자들의 설명이다.
그러나 이같은 여권의 ‘축소지향성’ 해결방향 설정에도 불구하고 실제 여권 전반의 흐름은 뚜렷한 대응책을 내놓지 못한 채 엉거주춤한 쪽이다.
여권의 한 관계자도 “일단 야당의 태도를 당분간 지켜보고 대응전략을 세울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반면 한나라당은 정국주도권을 되찾기 위해서라도 차제에 집요하게 DJ의 도덕성에 ‘흠집’을 내겠다는 기세다.
특히 발빠르게 진행되는 듯한 여당의 합당 움직임에 경계심을 보여온 한나라당은 분위기 반전을 위한 ‘뜻밖의 호재’에 고무된 상태다.
여권 인사들은 이와 관련해 이번 사건이 김종필(金鍾泌)국무총리 귀국 이후 ‘연내 합당선언→개각→통합신당 창당’ 등 일련의 수순을 통해 정국분위기를 일신해 총선 때까지 밀고 가려던 여권의 시나리오에 큰 차질을 가져올 것이라며 노심초사하는 표정이다.
국민회의 한 관계자는 “정치자금문제가 불거지면 필연적으로 신당창당자금이니 여권 프리미엄이니 하는 얘기가 이슈가 될 수밖에 없다”며 “이번 사건이 합당붐 조성에 찬물을 끼얹을까봐 걱정”이라고 말했다.
〈이동관기자〉dklee@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