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신…, 당신이라는 말 참 좋지요, 그래서 불러봅니다 킥킥거리며 한 때 적요로움의 울음이 있었던 때, 한 슬픔이 문을 닫으면 한 슬픔이 문을 여는 것을 이만큼 살아옴의 상처에 기대, 나 킥킥…, 당신을 부릅니다 단풍의 손바닥, 은행의 두 갈래 그리고 합침 저 개망초의 시름, 밟힌 풀의 흙으로 돌아감 당신…, 그대라는 자연의 달과 별…,킥킥거리며 당신이라고…,금방 울 것 같은 사내의 아름다움 그 아름다움에 기대 마음의 무덤에 나 벌초하러 진설 음식도 없이 맨 술 한 병 차고 병자처럼, 그러나 치병과 환후는 각각 따로인 것을 킥킥 당신 이쁜 당신…, 당신이라는 말 참 좋지요, 내가 아니라서 끝내 버릴 수 없는, 무를 수도 없는 참혹…, 그러나 킥킥 당신
―시집 ‘혼자 가는 먼 집’(문학과 지성사)에서
고고학을 공부하겠다고 허수경이 독일로 간 지 팔년째다. 나는 그녀가 한 일년 쯤 지나면 돌아오려니 했다. 못견디고 돌아오려니… 유난히 우리나라 밥을 좋아하고 우리나라 노래, 우리나라 악기, 우리나라 고전들을 좋아했으니 무엇보다도 우리나라 말과 음식이 바로 그녀 자신이었으니 못견디고 돌아오려니…했는데 벌써 팔년이다. 그녀는 언제 오나? 그런 생각은 이제 안한다. 다만 보고 싶을 때면 시집을 꺼내서 한편 읽고 또 한편 읽는다. 내게는 그녀의 시가 해석이 필요없다. 그냥 알겠다. 너무나 알겠다. 반성할 뿐이다. 있을 때 다정히 굴 것을…친구로서도 동료로서도 속마음이 많았고 매정하기조차 했으니.
신경숙(작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