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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옴부즈맨칼럼]양승목/사건의 사회적의미 통찰해야

입력 | 1999-12-19 18:47:00


동아일보는 한국언론을 대표하는 유력지의 하나이다. 유력지라면 범상한 사건에서 핵심을 통찰하고 그것을 사회적 의제로 부각시켜 여론을 이끌어 내는 힘이 있어야 한다. 그러나 지난 주의 동아일보는 아쉽게도 그 명성에 미치지 못했다.

먼저 14일자 정치면과 사회면을 보자. 정치(A4)면에는 국회 정무위에서 여당의원이 야당의 여성의원에게 입에 담기 어려운 폭언을 했다는 기사가 나온다. 두 사람의 사진까지 실린 작지 않은 기사였다.

그러나 그것은 에피소드 중심의 가십성 기사였다. 비슷한 성격의 기사가 사회(A31)면에도 나온다. 이번에는 민주노총 간부가 ‘파업유도’ 특별검사 사무실을 찾아와 폭언과 욕설을 했다는 기사이다. 사회면 톱으로 처리된 만큼 14일자 전체로 봐서도 비중이 결코 작지 않은 기사였다.

그러나 그 내용은 국회 정무위 폭언 기사와 마찬가지로 에피소드 중심이었다.

여기서 지적되어야 할 것은 두 사건이 모두 에피소드 중심의 가십성 기사로 처리되면서 그것이 내포하고 있는 깊은 사회적 의미가 제대로 드러나지 않았다는 점이다. 이 두 사건은 따지고 보면 현재 우리 사회가 극도의 ‘야만사회’임을 드러내는 표징이라고 할 수 있다.

사회지도층 인사들에 의해 공공연하게 자행되는 무례함과 난폭함은 ‘옷로비’사건에서 드러난 도덕적 타락과 함께 우리 사회의 근본이 무너지고 있음을 상징하는 것이다.

14일자의 두 기사를 보고 웬만한 독자라면 느꼈을 것이다. ‘아, 이거 우리 사회에 뭔가 이상이 있구나.’ 두 사건을 비중있게 보도하면서도 그 사회적 의미를 통찰하지 못한 것은 정치면과 사회면의 구분을 뛰어넘어 두 기사를 종합적으로 보는 시각이 부족했던 게 아니냐는 의문이 생긴다.

비슷한 일이 다음 날에도 발생하였다. 15일자 A3면에는 국회 정치개혁특위가 선거법 협상에서 선거기사심의위원회를 설치키로 합의했다는 기사가 나왔다. 심의위는 불공정한 선거보도를 한 언론인에게 1년 이내의 업무정지를 결정할 수 있다는 내용이다. 이것은 언론에 재갈을 물리겠다는 엄청난 내용이다.

그런데 동아일보는 이것을 한 쪽 구석에서 작은 기사로 다루었다. 동아일보는 언론의 자유를 위해 투쟁했고 또 그로 인해 고통받은 역사가 있다. 그런 동아일보가 언론의 자유를 제약하게 될 악법의 출현가능성에 이토록 무심하게 반응했다는 사실이 놀랍다. 언론학과 학생들도 흥분할만한 소재를 프로들이 놓쳐서야 되겠는가.

덕택에 이 뉴스를 톱에 올린 신문에 비해 15일자 동아일보 A1면은 초라하게 보였다.

이런 가운데 언론의 비판보도에 대한 김대중(金大中)대통령의 불만에서 나타난 문제점을 조심스럽게 지적한 17일자 A8면의 기사는 돋보였다. 또 천용택 국가정보원장의 비보도 전제 발언을 독자의 알 권리 보호라는 측면에서 소개한 A3면의 기사도 용기있는 결정이라고 본다.

마지막으로 사족 한 마디. 유력지로서 결코 소홀히 다룰 수 없는 문제가 편집이다. 신문에서 편집은 일반 상품으로 치면 디자인과 같다. 같은 품질이라도 디자인에 따라 상품 가치가 달라진다. 이런 뜻에서 동아일보의 편집에 개선이 있었으면 한다. 동아일보의 지면은 대체로 두부모 자른 듯 반듯반듯한 느낌을 주고 있다. 한 마디로 단정해 위에서 아래로 유연하게 흐르는 생동감이 없다. 다양한 사각형의 조화 속에 때로는 파격미를 갖춘 개성있는 편집이 되었으면 한다.

양승목