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키장의 안전에 비상이 걸렸다.
본격적인 스키철을 맞아 본보 취재팀이 경기와 강원지역의 주요 스키장을 찾아 점검한 결과 대부분 안전관리가 소홀해 각종 사고 위험이 높은 것으로 밝혀졌다.
스키를 타는 사람과 스노보드를 타는 사람이 뒤섞여 슬로프를 질주하는가 하면 슬로프 주변에 설치된 안전울타리도 엉성하기 짝이 없었다.
또 스키어들을 실어나르는 리프트 밑에 안전망을 설치하지 않은 곳도 많았다.
전문가들은 스키어들의 안전의식 부족도 큰 문제라고 지적했다.
▼ 초보-상급자 구분없이 ▼
▽뒤죽박죽 슬로프〓19일 오후 7시경 경기 남부의 A스키장. 최상급 코스를 제외한 대부분의 슬로프마다 스키어와 스노보더들이 뒤섞여 위험천만한 질주를 하고 있었다.
스노보드는 속도조절이나 방향전환이 스키보다 자유롭지 못하기 때문에 슬로프를 스키와 따로 운영하는 것이 바람직하다는 게 전문가들의 지적.
이 스키장에서는 요즘 하루 수십건의 크고 작은 충돌사고가 발생, 20명 가량이 의무실을 찾고 있다.
▼ 울타리 충돌사고 잦아 ▼
슬로프의 눈 상태도 좋지 않았다. 적설량이 부족한 상태에서 성급하게 개장한 탓인지 슬로프 맨아래쪽의 경우 빙판을 방불케 했다. 중상급자 코스의 안전울타리 앞 1m 가량은 아예 맨땅이었다.
이같은 실정은 비단 이곳 뿐만이 아니다. 18일 오후 강원 남부 B스키장. 13개의 슬로프 가운데 개방된 2곳에 초보자 상급자 구분 없이 1000여명이 뒤섞여 있었다.
서울 강남구에서 왔다는 김성주씨(29)는 “초보자들이 뒤섞인 슬로프에서 스키를 타다보면 마치 곡예운전을 하는 기분이 들곤 한다”고 말했다. 이 스키장에서는 지난해 시즌 3개월 동안 충돌 등으로 260명이 다쳐 의무실을 찾았다.
▽딱딱한 안전울타리〓슬로프 주변에 설치된 안전울타리의 재질이 딱딱한 곳이 많아 빠른 속도로 충돌할 경우 큰 부상을 입을 우려가 높았다.
강원 C스키장의 안전울타리는 높이 2m 가량의 우레탄망이었다. 강원 D스키장의 경우는 플라스틱망.
경기 A스키장은 나무울타리에 6㎝ 두께의 얇은 매트를 겉에 댄 상태였다. 그나마 이 매트는 관할 행정당국의 지적을 받은 뒤 우레탄 그물을 뜯어내고 부랴부랴 설치한 것.
올 2월6일 경기 이천시의 한 스키장에서는 상급자 슬로프를 타던 초등학생이 안전매트와 충돌, 슬로프 밖 3m 아래 언덕에 떨어져 숨지는 사고가 발생하기도 했다.
이에 대해 한 스키장 관계자는 “외국 스키장에는 안전울타리가 아예 없는 곳이 많다”며 “스키어들 스스로 자기 실력에 맞게 슬로프를 선택해 타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 안전망없는 리프트도 ▼
▽불안한 리프트〓경기 A스키장의 경우 지상 5m 높이의 리프트 밑에 안전망이 전혀 설치돼 있지 않았다.
리프트승차장에는 반드시 2명의 안전요원을 두도록 규정돼 있으나 17일 오후 이곳에는 안전요원 1명만 자리를 지키고 있었다.
강원도가 지난달 도내 6개 스키장의 리프트 안전관리 실태를 조사한 결과 고압전기시설 이상(H스키장), 삭도의 외부전기배선 미정리 정돈(A스키장), 탑승자 안전수칙안내판 미부착(Y스키장) 등이 적발됐다.
경기도내 스키장에서는 리프트 안전관리가 미흡해 지난 시즌에 30분 이상 리프트가 정지하는 사고가 20건이나 발생했다.
강원 E스키장에서는 올 1월 20명이 탄 리프트가 갑자기 멈춰서는 바람에 스키어들이 1시간 동안 추위와 공포 속에 떨어야 했다.
강원도스키협회 이동종(李東宗·46)전무이사는 “탑승자의 부주의로 리프트가 멈추는 경우가 가끔 있으나 안전에는 별 문제가 없다”며 “안전요원을 두는 데는 한계가 있다”고 말했다.
경기도는 △스노보드와 스키의 슬로프 구분 운영 △슬로프 안전망과 안전매트의 세부 안전기준 마련 등을 법제화 해달라고 문화관광부에 건의했으나 아직 받아들여지지 않고 있다.
〈홍천·횡성·용인〓최창순·박종희기자〉cschoi@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