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년 11월의 미국 대통령선거를 노리는 예비후보들은 앨런 그린스펀 연방준비제도이사회(FRB)의장의 4회 연임 여부를 결정할 권한이 없다. 그린스펀의 현재 임기는 내년 6월에 끝나기 때문. 그런데도 그린스펀 재임명 여부가 대통령선거전의 중요쟁점이 됐다. 미국경제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그만큼 크다는 얘기다.
더욱 특이한 것은 공화 민주 양당의 유력 예비후보들이 빌 클린턴 대통령(민주)에게 그린스펀을 빨리 재임명하라고 재촉하는 점.
공화당의 선두주자인 조지 W 부시 텍사스 주지사는 “가장 빠른 시기에 클린턴 대통령이 그를 재임명하겠다고 발표하기 바란다”고 공언했다. 부시 주지사의 부친 부시 전대통령과 그린스펀은 사이가 좋지 않았다. 부시 전대통령은 92년 대선 당시 경기를 부양하기 위해 금리인하가 필요하다고 몇차례나 말했으나 그린스펀은 이를 묵살했다. 부시 전대통령이 재선실패의 최대 요인을 금리인하 좌절로 보고 있을 정도. 그런데도 부시 주지사가 그린스펀에게 전폭적인 신뢰를 표시하는 것은 그만큼 그린스펀이 잘하고 있다는 뜻이다.
민주당의 선두주자인 앨 고어 부통령은 그린스펀에게 ‘A++’의 최고학점을 주었다. 그린스펀 칭찬의 압권은 존 매케인 상원의원(공화). 부시 주지사를 맹추격하는 매케인은 “만약 그린스펀이 죽기라도 한다면 그를 일으켜 세워 검은 안경을 씌워서 사람들이 그의 사망을 모르게 한 뒤에 가능한 한 오래 의장직에 있도록 하겠다”고 말했다.
물론 찬사만 있는 것은 아니다. 빌 브래들리 전상원의원(민주)은 “그린스펀만큼 잘하면서 금융시장의 신뢰를 얻을 수 있는 다른 인물이 없는 게 아니다”는 태도. 출판재벌 스티브 포브스(공화)는 그린스펀이 인플레를 우려해 금리를 자주 올린 데 대해 “몸이 아주 건강한 사람에게 언젠가 아플지 모르니까 지금 좀 아프라고 처방하는 (돌팔이) 의사와 다를 바 없다”고 비판하고 있다.
〈워싱턴〓홍은택특파원〉euntack@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