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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칼럼]문호근/그립다, 時가 있던 술자리

입력 | 1999-12-24 19:45:00


몇년 전 중국을 여행할 때 조선족(朝鮮族) 동포들과 술자리를 함께 한 적이 있었다. 술잔이 몇순배 돌고 난 뒤 여흥이 시작되었다. 누구는 노래하고, 누구는 춤추고, 누구는 만담을 했다. 술자리가 풍성했다. 그리고 어떤 한 분이 일어나더니 시를 한수 읊었다. 아, 시낭송, 그것 오랜만에 만나는 장면이었다. 술자리의 시낭송!

성래운 선생이 살아계실 때 그분은 주흥이 오르면 언제나 시낭송을 하셨다. 때로는 구성지게, 때로는 비감하게. 주흥을 돋우면서 동시에 우리들이 같이 생각할 문제를 일깨워주시고는 했다. 그분이 돌아가신 뒤에는 이런 모습은 더이상 볼 수 없게 되었다.

왜 그럴까? 왜 우리는 술자리에서 춤도 잊고 만담도 잊고 시낭송도 잊은 것일까? 오직 노래, 노래…. 아무튼 우리의 놀이문화는 참 형편없어졌다. 몇년 전만 해도 하다못해 누군가가 혁대를 빼들고 뱀장수 흉내라도 내곤 했었는데….

노래가 나쁘대서가 아니다. 우리처럼 노래 좋아하는 민족이 또 없다지? 하지만 얼마 전만 해도 있던 문화, 그리고 아직도 중국에 사는 동포들에게는 남아 있는 이런 문화들이 왜 없어져 버렸느냐는 물음이다.

‘남들과 다른 것’을 하기 두려워 하는 마음, 그것 때문일 것이다. 한마디로, ‘쪽팔리기’가 싫은 것이다. 하지만 그게 무서워서 잘하지도 못하는 노래를 오랜 시간 연습해서 사람 모이는 자리에 나가 자기 차례를 초조하게 기다리는 것처럼 어리석은 일이 또 있을까? 왜 같은 연습을 하더라도 내가 좋아하는 문화 내용을 준비하지 못하는 것일까? 내 문화는 거저 얻어지지 않는다. 내가 좋아하는 것을 찾아내고, 그것을 연습하는 노력을 투입하지 않으면 안된다. 그랬을때 내 문화가 생기고 너의 문화가 생기고 또 세번째 사람의 문화가 생기면서 ‘우리들의’ 문화는 풍부해질 것이다. 우리들의 아마추어 문화가 이렇게 얻어지게 되면 우리는 그 방면의 전문가들이 만드는 문화에 눈이 뜨이게 된다. 전문가의 문화는 아마추어 문화의 연장인 것이니까. 아마추어라는 말은 본래 무엇을 사랑하는 사람이라는 뜻이 아니던가? 사랑하기 때문에 그것을 전문으로 하는 사람들의 공연장을 찾아주고, 후원하고, 그래서 그가 만드는 문화를 같이 기뻐하며 즐기는 사람들이 아니겠는가? 놀이문화가 풍성해지는 것은 바로 전문문화의 수준을 높이는 일이 된다. 그랬을 때 우리들의 문화가 세계 무대에 떳떳하게 설 수 있게 될 것이다.

눈이 와서 아름다운 성탄절이 되었다. 가족이 모여서 밥을 같이 먹고, 그리고는 제발 텔레비전 앞에 바보처럼 앉아 히히덕거리는 대신 오늘밤부터 나는 무엇을 연습할 것인지를 서로 이야기했으면 한다. 그리고 술마시던 아빠도 소매걷고 설거지를 같이 한 뒤에, 칭얼거리는 막내의 머리맡에 앉아 동화책이라도 읽어주었으면 좋겠다. 아빠가 지어낸 이야기라면 더 좋고….

아이들이 잠든 밤에 내외가 마주앉아 묵은 시집의 책장을 들추며 다음 모임에 낭송할 시를 골라 목소리를 가다듬으며 연습해 보는 것은 어떨까? 시낭송보다는 춤을 더 좋아하는 아내에게는 한번 춤을 추어보라고 권하며 어색한 몸짓을 지적해 주는 것도 좋을 것 같다. 성탄의 밤을 그렇게 지낼 수 있다면 이 겨울 긴긴 밤들이 내내 즐거울 수 있을 것 같다.

문호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