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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과 사람]'겨울이 꽃핀다'/박노해 6년만의 새시집

입력 | 1999-12-24 19:45:00


▼ 겨울이 꽃핀다 ▼

다시 시인으로서의 그를 이야기해 보자.

시인 박노해(42·본명 박기평)가 새 시집 ‘겨울이 꽃핀다’(해냄)를 냈다. 경주교도소 복역 시절인 93년 출간된 ‘참된 시작’ 이후 6년만이다.

‘깃발’의 쓰러짐이 선연한 핏빛의 충격으로부터 흑백필름 속의 그림자로 변화한 지금, 과거의 ‘얼굴없는 노동시인’이 시어를 통해 형상화하고자 하는 것은 무엇일까.

시인은 변화를 인정하지 않는 눈들을 향해 먼저 변화를 설득한다. ‘오늘 명궁은 과녁 뒤에 숨은 카메라 렌즈를 맞히네/선명한 과녁 사라진 변화 시대에/나는 무엇을 향해 쏴야 하나’(눈을 쏘다)

그러면서도 그는 변화가 가져올 지 모르는 ‘편향성’을 경계한다. ‘나는 안다/이 패배는 뭔가 우리에게 메시지를 전하려 했다는 걸/패배로 위축되거나 자포자기하길 바란 게 아니라는 걸/(중략)/한쪽이 무너졌다고 반대쪽으로 외눈 이동하거나/나는 안 무너졌다고 그대로 머리 밀고 나가거나/여전히 부정과 비판만 일삼기를 바란 게 아니라는 걸’(패배 메시지)

따라서 그의 목소리에 위축되지 않는 공격의 메시지는 여전하다. 그 공격의 대상은 현대 산업사회의 무한욕망, 무한이윤추구로 분명히 읽힌다.

그는 ‘나도 거품이었고 부실이었다’고 고백하지만, ‘이것이 나의 노여움이다//이 모든 걸 내 탓으로 알고 받아들이는 게/너를 조금도 참회시키거나 변화시킬 수 없다는 것이다/너는 어제도 오늘도 그러한 것처럼/내일 다시 숱한 사람들을 들뜨게 하고/한 순간 통째로 무너뜨릴 것이다’라며 눈을 크게 치뜬다.

그러나 시인의 처방전은 노여움과 폭력에서 한발 나아가 생명에의 예찬으로 향한다. 그는 ‘진정한 강함은 섬세함이다’라고 외치며, ‘석녀처럼 시들어가는 너에게/물처럼 바람처럼 나직이 흘러가/네 온몸 구석구석을 사무치게 애무하며/그대 안의 따뜻한 생명수를 길어올리고 싶어’(부드러운 페니스로)라며 희망을 노래한다.

〈유윤종기자〉gustav@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