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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카데미 인 북]'현상학과 정치철학'

입력 | 1999-12-24 19:45:00


▼ '현상학과 정치철학' 김홍우 지음/문학과지성사 펴냄/756쪽 3만원 ▼

“후설의 현상학은 한마디로 ‘현상에 대한 철학’에서 ‘현상의 철학’으로 돌아가야 한다는 주장이다. 그러나 많은 사람들은 후설의 현상학을 ‘현상의 철학’이 아닌 ‘현상에 대한 철학’으로 오해하고 있다.”

“한국 정치의 철학적 과제 중 하나는 한국 정치에 ‘대한’ 철학에서 한국 정치‘의’ 철학으로 이행하는 문제라고 생각한다.”

서울대 정치학과교수인 저자는 사회과학의 방법들이 처음에는 사회현상을 이해하기 위한 방법으로 시작되지만 점차 사회현상을 대신하다가 급기야는 사회현상이 없는 방법으로 귀결된다고 주장한다.

이들은 특정한 인식틀에 맞춰 정치를 재구성함으로써 생생한 민주적 정치생활을 ‘제거’한다는 것이다.

프레드 달마이어교수에게서 현상학을 배우고 유진 밀러교수에게서 정치철학을 배웠다는 저자는 이러한 ‘정치의 전복’을 극복할 대안을 현상학과 정치철학의 만남에서 찾았다. 경험주의에 기반한 정치행태론의 ‘실증성’에서 현상학의 ‘민감성’으로 전환함으로써 현장의 무감각성에서 오는 현대 사회과학의 무책임성을 극복할 수 있다고 주장한다.

박사학위논문에서부터 ‘현상학과 정치철학’이라는 주제에 연구를 집중해 온 김교수는 이번 저서에서 특히 모리스 메를로―퐁티에 주목했다.

현상학을 체계화한 후설은 사유하는 세계보다는 몸으로 사는 ‘생활세계’에 주목했고 알프레드 슈츠는 이 ‘생활세계’의 면을 발전시켰지만 정치상황에 대해서는 심도 있는 탐구를 하지 않았다.

이에 비해 메를로―퐁티는 정치상황에 관심을 기울였다. 메를로―퐁티의 ‘몸의 철학’은 단순히 개인의 몸이 아니라 메를로―퐁티 자신이 겪은 정치적 상황이 관계된 몸이라는 것이다.

김교수는 추상적 이론이 현실을 압도하는 정치학계의 논의를 경계하고 80년대 이후 우리 학계를 뜨겁게 했던 논의들을 정리하며 구체적 현실의 정치세계 구상을 위한 몇 가지 원칙을 제안한다. 특히 소수가 미리 공동선(共同善)을 전제해 놓는 정치의 위험성을 지적한다. 공동선 이전에 먼저 ‘공동세계’, 즉 함께 모이는 것이 전제되어야 하며 공동선은 공동의 참여에서 나와야 한다는 주장이다.

〈김형찬기자·철학박사〉khc@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