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일이 통일되자 당연한 논쟁이 벌어졌다. 어느 도시가 수도가 되어야 하느냐 하는.
통일이 동독의 붕괴와 함께 이루어진 것이므로 선택은 서독 쪽에 달려 있었다. 본에서 베를린으로 옮겨야 한다는 제안이 나왔다. 반대입장의 가장 큰 논리는 물론 자금이었다. 굳이 상처로 얼룩진 도시, 그것도 동독의 한가운데 있는 도시로 옮길 필요가 뭐 있느냐는 이야기도 나왔다.
정치인들은 더 넓게 보았다. 대통령과 수상이 나서서 수도를 옮겨야 한다고 주장했다. 동독의 한가운데로 들어가서 거기 있던 시민들을 껴안아야 한다고 했다. 동독이 새로운 독일의 한 부분임을 확인시키는데 반드시 필요한 일이라고 설득했다. 천도안(遷都案)은 의회를 통과했고 베를린은 독일의 수도가 되었다.
새로운 수도의 가장 핵심적인 건물은 연방의회 의사당이었다. 1894년 세워진 건물은 나치와 러시아 군인들에 의해 훼손된 상태였다. 동서독 분계선이 근처를 지나면서 건물은 폐허처럼 남겨졌다.
연방의회 의사당으로 바뀔 이 묵직한 석조 건물에 건축가는 유리 돔을 얹어놓았다. 낮 시간의 의사당은 돔을 통해 들어오는 빛으로 환하게 밝혀졌다. 의회가 열리는 저녁 시간이면 유리를 통해 도시로 비쳐지는 의사당의 불빛은 의정활동 중인 의원들의 존재를 시민들에게 알리는 도구도 되었다.
이 돔은 시민들이 마음대로 오를 수 있는 그런 돔이었다. 시민들이 자신이 선출한 의원들의 의정활동을 굽어본다는 아이디어가 건축적으로 표현되었다. 유리벽 너머로는 재건되는 도시가 파노라마처럼 펼쳐졌다. 통일된 독일이 시민의 사회라는 사실은 이처럼 건축을 통해 명쾌하게 표현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