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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동원-김경원씨 특별대담]남북관계 지난 반세기와 앞날

입력 | 1999-12-27 20:48:00


《21세기에도 남북은 지구상의 마지막 냉전지대로 남을 것인가. 남북이 대립과 갈등의 벽을 넘어 화해와 협력의 손을 맞잡을 수 있는 길은 없는 것일까. 임동원(林東源·전통일부장관)국가정보원장과 김경원(金瓊元)사회과학원장의 대담을 통해 올 한해 남북관계를 결산하고 새해 전망을 들어 보았다. 대담은 임전장관이 국정원장에 임명되기 전인 17일 동아일보 회의실에서 있었다.》

▽김원장〓20세기는 우리 민족에게 시련과 어려움을 가져다 준 세기입니다. 국제정치의 흐름이라는 관점에서 논리적으로 보면 국제냉전의 산물로 시작된 남북분단은 냉전이 끝난 뒤에는 전환돼야 하는데도 실제상황은 다르게 나타났어요. 지난 반세기의 남북관계를 어떻게 보십니까.

▼냉전의 그늘 여전▼

▽임원장〓냉전시대였던 지난 반세기는 3단계로 나눌 수 있습니다. 첫째는 소련의 팽창주의에 대항하는 미국의 군사력 전개가 치열했던 2차대전부터 60년대 말이고, 두번째는 70년대로 이른바 데탕트시대지요. 데탕트시대는 남북이 묵시적으로 상대의 실체를 인정하고 ‘7·4’ 남북공동성명에 합의하는 등 화해노력을 보이면서 동시에 군비경쟁과 체제경쟁을 치열하게 벌인 시대입니다. 세번째는 90년대 초 세계가 탈냉전의 전환기에 들어가면서 민주주의와 시장경제가 확산되는 시기입니다. 핵감축 군비감축 등 탈냉전의 프로세스가 한반도에도 순기능으로 작용하면서 남북도 서로 인정하고 화해 협력을 통해서 평화공존을 모색한 단계이지요. 물론 아직은 한반도 냉전구조가 해결되지 않아 이 과정은 계속 진행돼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김원장〓70년대 남북대화가 시작되고 ‘7·4’ 공동성명이 나온 것은 이른바 ‘미국―중공 접근’(71년)의 영향이라고 생각합니다. 남북한이 각각 동맹국에 대한 자신감을 잃은 것이 오히려 남북한을 접근시키는 동인(動因)이었지요. 냉전종식 이후 남북간 긴장이 지속되는 이유는 역설적으로 공산주의 체제의 붕괴와 몰락 때문인 것으로 보입니다. 우리는 독일통일을 보고 흥분하는 등 과잉기대를 했고 북한은 체제가 붕괴될 것이라고 경각심을 가진 것이 남북관계를 악화시키는 효과를 가져왔어요.

▽임원장〓90년대에 들어와 남북이 고위급회담을 개최하는 등 긴장완화 노력을 시작했지만 북한 핵개발 문제가 불거졌습니다. 노태우(盧泰愚)정부는 핵문제 해결과 남북관계 개선의 병행전략을 실행했지만 93년에 들어선 김영삼(金泳三)정부가 ‘핵을 가진 자와는 악수할 수 없다’며 핵문제와 남북관계 개선을 연계시킴으로써 관계개선 노력이 중단됐어요. 김대중(金大中)정부는 다시 남북 화해협력을 위해 노력하고 있습니다. 탈냉전 프로세스를 진척시키면서 남북간 불신, 북―미간 적대관계, 그리고 북한의 흡수통일에 대한 공포 등 혼재한 문제를 하나씩 해결해야 하는 시점이에요.

▽김원장〓21세기 초인 향후 10년을 내다본다면 지금 우리 눈앞에 진행되는 몇가지 추세가 계속될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첫째는 국제관계에 있어서 경제의 비중이 점점 커질 것이라는 점이에요. 이로 인해 나타나는 현상은 ‘국제관계가 더 이상 제로섬이 아니다’라는 상호의존적인 인식의 확산이지요. 얼마전 만난 중국 지도층 인사들이 미국경제가 잘돼야 중국경제가 이롭다는 것을 공공연하게 대전제로 깔고 얘기하는 것을 보았습니다. 우리의 대북정책도 이러한 국제관계의 흐름에 적극 참여해야 할 것으로 생각합니다.

▽임원장〓그렇습니다. 20세기에는 산업화의 상처 및 이에 대한 반동으로 공산주의가 팽창하면서 냉전이 전개됐어요. 21세기는 세계화를 지향하고 상호의존적인 관계로 가면서 우리도 분단을 극복하고 통일국가를 건설하는 민족번영의 세기가 될 것으로 봅니다.

▽김원장〓냉전구조를 해체하는 문제에 대해서는 저 자신은 낙관도 비관도 하지 않습니다. 아직은 북한의 나아갈 방향을 자신있게 판단하는 것이 어렵기 때문이지요. 그래도 우리 주변정세를 보면 낙관적으로 봐도 될 만한 상황들이 많은데 정부가 추진하는 대북포용정책은 어떤 의미를 갖고 있습니까.

▼'사실상의 통일' 목표▼

▽임원장〓지난 반세기 동안 역대 정부의 대북정책의 특징은 튼튼한 안보태세를 통해 ‘평화를 수호하는(peace keeping)’정책에 치중한 것입니다. 앞으로는 한발짝 더 나가 ‘평화를 만들어가는(peace making)’정책을 해야 합니다. 남북관계 개선 노력을 하고 주변국가들에 대한 포괄적인 접근을 통해 법적인 통일에 앞서 ‘사실상의 통일’을 실현해 나가자는 것이 대북 포용정책의 목표지요. 지난 2년간 이런 분위기를 조성해 왔고 새해부터는 본격적으로 추진해 나갈 것입니다.

▽김원장〓과거에도 정부는 화해 협력과 평화를 얘기했지만 제가 보기에는 현 정부의 정책은 실제 내용에서 두가지 차이점을 보이고 있어요. 하나는 우방국가들이 남북한 관계와 상관없이 먼저 대북관계를 개선해도 좋다는 것입니다. 이런 태도는 우리 외교의 혁명이라고도 볼 수 있어요. 두번째는 정경분리 원칙이에요. 우리 기업들이 남북 당국간 정치적 관계와 상관없이 경제협력을 해도 좋다는 입장을 취했기 때문에 현대의 대북사업이 가능했다고 봅니다.

▽임원장〓지난 2년간의 대북포용정책의 결과는 긴장고조를 방지하고 평화를 유지함으로써 화해 협력의 큰 흐름을 만들어 나갈 수 있는 여건을 조성한 것입니다. 예컨대 새정부 출범 후 지난 2년간 북한을 방문한 기업인 기술자 근로자 등 우리측 인원은 약 9000명이에요. 그리고 130개 업체가 170여개 품목을 북한에서 위탁가공으로 생산하고 있습니다. 이게 다 정경분리 정책의 소산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북한도 최근 2년간 이와 같은 우리의 대북정책 또는 정세변화, 미국 일본의 대북 태도 변화가 어느 정도 반영돼 다분히 실용주의적으로 접근하려는 조짐이 나타나고 있습니다.

▽김원장〓정부가 국민의 지지를 확보하기 위해서는 대북관계를 국내정치에 이용하지 않겠다는 믿음을 주어야 합니다.

▽임원장〓전적으로 동감합니다. 김대중정부는 남북한 관계 민족문제를 정략적으로 이용하면 안된다는 것을 대전제로 하고 있습니다.

▽김원장〓북한의 안보위협 문제와 관련해 최근의 동향은 어느 정도 고무적이라고 봅니다. 첫째, 남북 간 기본적인 힘의 균형에 있어서 최근의 추세는 유리하게 돌아가고 있다고 봐요. 둘째로는 북한이 그동안 문제를 제기했던 대량살상무기의 위협문제에 우리 정부와 미국을 포함한 우방국들이 적절하게 대응함으로써 어느 정도 우리의 통제로 들어오게 하는 데 성공했다고 봅니다. 우리도 국제통화기금(IMF)관리체제에서 벗어나 다시 성장의 길을 달리고 있고 북한이 베를린회담에서 미사일 실험발사 유예선언을 한 뒤 미국과 협상을 지속하는 등 안보환경이 개선됐어요.

▽임원장〓21세기를 시작하면서 우리가 해야 할 일은 무엇이겠습니까. 김원장께서는 어떤 목표를 갖고 남북관계를 개선하도록 하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생각하십니까.

▽김원장〓긴 안목에서 통일을 향해 가야 하고 이 과정에서 우리의 할 일이 무엇인가를 생각해야 하겠지요. 첫째, 우리가 지불할 통일비용을 고려해 경제를 튼튼히 만들어야 합니다. 둘째, 민주주의와 민주정치를 더욱 공고히 해 뿌리내리는 것입니다. 북한 사람들이 싫어하는 얘기겠지만 결국 통일은 북한사회까지도 민주화시켜야 하는 거예요. 따라서 민주주의의 공고화가 우리가 21세기에 추구해야 할 목표라고 생각합니다.

▼전쟁방지가 핵심▼

▽임원장〓맞는 말씀입니다. 정부는 새해에도 대북포용정책을 인내심 있게 추진할 것입니다. 남북경제협력을 보다 적극적으로 추진할 수 있는 여건을 만들고 더 나아가서는 당국간 대화를 통해 남북기본합의서가 이행되도록 노력할 것입니다. 평화를 만들어서 전쟁을 방지하는 것이 우리 정책의 핵심이라는 말씀을 드리며 대담을 마치도록 하지요.

〈정리〓김영식기자〉spear@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