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채권시장 정상화를 위해 설립된 ‘채권시장 안정기금(채안기금)’ 운용에 대해 ‘관치’라는 말이 나온다. 채안기금 때문에 ‘돈이 안돈다’라고도 한다.
대우사태 이후 투신사 수익증권 환매로 인해 채권시장이 마비 상태에 빠져들면서 투신사의 유동성 부족이 심각히 우려되고 채권매수세가 상실돼 안정을 보이던 금리가 10.82%(회사채 수익률)까지 치솟았다. 당시 금융연구원 등은 적정금리 수준을 8∼9%로 추정한 바 있고 콜금리(1일물)는 4%대에 머물던 상황이었다. 이에 따라 9월 금융시장을 지키고자 채안기금이 설립된 것이다.
1년 한시조직인 채안기금은 기본적으로 자율성과 상업성에 의해 운용된다. 출자 금융기관으로 구성된 기금운용위원회가 국공채와 우량 회사채를 대상으로 기금을 운용하고 있고 설립이후 약 18조원어치의 채권을 매입했다. 그 영향으로 금리가 다시 안정되면서 시장이 정상화하고 있다. 여러 지표를 볼 때 채안기금에 의한 정책적 시장개입은 시장실패를 치유하기 위한 올바른 선택으로 판단된다.
일단 금융시장이 정상화하면서 금리 안정세가 유지되고 부분적으로 채권거래도 되살아나고 있다. 큰 문제없이 돈이 돌고 있는 것이다. 연말에는 국제결제은행(BIS)기준 자기자본비율 관리, 결산실적 관리를 위해 채권매매가 위축되는 것이 일반적인 현상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회사채수익률이 한자리 숫자에 머무르고 있으며 9월과 비교할 때 11월중 회사채 발행물량이 4000억원 수준에서 1조원 이상, 1일 유통물량도 1조5000억원 수준에서 2조원 이상에 달하는 등 완만한 증가 추세에 있다. 특히 투신사의 ‘하이일드’ 수익증권 판매에 힘입어 채권시장이 위축된 가운데서도 중소기업의 회사채발행이 전년에 비해 712.3%나 증가했다. 오히려 투신사는 편입대상의 채권을 찾는 데 어려움을 겪는 실정이다.
채안기금의 운용은 시장실패를 치유하기 위한 정책적 시장개입이다. 가격기능을 무시하고 금융거래자의 행태를 직접 제약해 시장기능을 왜곡시키는 관치와 정책적시장개입이 구별돼야 한다.
물론 채안기금이 시장실패를 치유하는 완전한 수단은 아니다. 오히려 채안기금의 문제점을 보완할 수 있는 수단을 개발해 금융시장의 안정을 조기에 정착시키는 것이 시급한 과제이다. 예를 들면 채권딜러간 중개회사(IDB)가 설립되면 분산돼 있던 가격정보가 집중됨으로써 채권매매가 활성화해 독점적 지위로 인한 채안기금의 문제점도 축소될 것이다. 채안기금의 역할을 분담할 수 있는 대형 전문채권 딜러의 육성도 과제이다.
대체로 잠재 성장률 5%, 물가상승률 2%, 적정 시장금리 6∼8%인 것으로 추정되며 최근 불안정한 상황에서도 적정 회사채수익률은 한자리 숫자인 것으로 분석된다. 금년 초 7% 대를 보이던 은행 예금금리가 11월 현재 6%대에 이르는 등 금융기관의 여수신 금리도 지속적으로 하락세를 보였으며 콜금리도 여전히 4%대를 벗어나지 않고 있다. 이러한 상황에서 불필요한 금리 불안정 심리가 파급되기보다는 채권시장의 안정을 위해 지혜가 모아져야 할 시점이다.
최장봉(금융감독원 부원장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