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7일 오후 6시10분경 서울 종로구 세종로 동아일보 새사옥 동아미디어센터 앞.
수십대의 자전거와 오토바이, 신문배달원과 기업의 홍보담당자 등이 뒤섞이면서 조용하던 거리가 갑자기 활기를 띠기 시작한다.
이곳은 매일 저녁 조간신문사들이 아침 배달판 신문을 인쇄하기에 앞서 가장 먼저 찍어낸 초판(가판)신문의 총집결지. 말하자면 ‘내일의 뉴스’를 미리 볼 수 있는 우리나라의 유일한 신문 파시(波市)다. 이때문에 주요 뉴스가 터질 때마다 외신기자들까지 몰려들어 가판 신문을 구하느라 북새통을 이루는 현장이다.
오후 6시30∼40분경. 각 신문사로부터 몇 묶음씩의 신문이 도착하자 기다리고 있던 100여명이 우르르 몰려들어 신문을 받아들고는 가로등 불빛을 중심으로 삼삼오오 모여 기사내용을 확인하는 진풍경이 벌어진다. 휴대전화로 어디론가 기사내용을 열심히 보고하는 사람도 여기저기 눈에 띈다.
매일 저녁 이곳에 약속처럼 모여드는 사람들은 바로 기업의 홍보관계자와 정부부처의 공보담당 직원이 대부분. 월별로 일정액의 돈을 미리 지불하고 이곳에 나와 초판신문에 실린 기사내용을 확인한 다음 ‘윗선’에 보고하는 것이 이들의 임무다.
10년째 초판신문을 보고 있다는 해태제과 홍보실 김철호(金哲鎬·38)과장은 “신문을 보러 나오던 다른 기업체의 남녀 홍보사원이 정이 들어 결혼한 일까지 있을 정도로 이 일은 홍보맨의 주업무 가운데 하나”라고 말했다.
일요일에는 가족과 나들이를 겸해 나와 신문을 본 뒤 ‘별일’ 없으면 돌아가는 가장도 있고 인근 커피숍에서 연인과 데이트를 즐기다 시간이 되면 신문을 보고 가는 젊은 홍보사원들도 많다. 최근엔 다른 사람보다 한순간이라도 빨리 정보를 알아내려는 주식투자자 등 일반인들의 모습도 보이기 시작했다.
이곳에서 ‘거래’되는 신문은 동아일보를 비롯해 종합일간지 9개, 경제지 3개, 스포츠지 4개, 영자지 2개 등 모두 18종으로 신문당 800∼900부에 달한다. 이 가운데 일부는 가판 배달조직에 의해 사무실이나 홍보담당 임원의 집으로 직접 배달되기도 한다.
▼46년간 정보메카 명성▼
이곳이 ‘정보의 메카’가 된 것은 6·25전쟁 직후인 1953년 동아일보가 피란지에서 돌아와 광화문에 둥지를 틀면서부터. 당시 동아일보는 발행부수가 다른 모든 신문을 합친 것만큼이나 많았고 사옥이 사통팔달의 광화문 한복판에 있다는 지리적 이점 때문에 신문판매원들이 자연스럽게 동아일보 사옥 앞으로 몰려들었던 것.
수십년 동안 별 변화가 없었던 이곳도 동아일보의 신사옥 동아미디어센터가 웅장하게 들어서면서 환한 모습으로 새단장을 하게 됐다.
▼"기념비적 장소 육성을"▼
신문이 발행되는 날이면 어김없이 매일 저녁 시장이 형성되면서 숱한 애환과 이야깃거리를 만들어냈다. 언론보도에 민감했던 김영삼(金泳三)전대통령은 야당총재시절 매일 이곳으로 운전사를 보내 모든 가판신문을 한 부씩 구입해간 것으로 유명하다.
모 야당 국회의원은 선거철에 자신을 낙선시키기 위해 정보기관에서 공작을 편다는 사실이 보도된 가판신문을 대량으로 사들여 선거구에 뿌리기도 했다. 87년에는 6·29선언을 보도한 동아일보의 가판이 이곳 가판시장을 포함해 서울 시내 전역에서 40만부나 팔려나가는 진기록을 세웠다.
롯데백화점 홍보실 조재협(趙在協·27)씨는 “동아일보 신사옥이 들어서면서 거리가 밝아져 신문읽기가 한결 수월하다”며 “동아일보사가 이 장소를 한국 언론의 기념비적인 장소로 발전시키기를 바란다”고 말했다.
〈홍성철·권재현기자〉sungchul@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