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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포츠 영웅 세기말 감회]축구의 '대명사' 차범근 감독

입력 | 1999-12-28 19:48:00


98년 6월22일 오후. 차범근 한국 월드컵축구대표팀 감독은 침울한 표정으로 김포공항 입국장을 빠져 나왔다.

한국축구 사상 처음으로 대회중 사령탑 경질…. 불과 1년전 전국민적 영웅으로 추앙받으며 한국의 월드컵 본선 진출을 이끈 명장의 뒷모습은 우울하기만 했다.

차감독은 국내에 돌아온 후에도 순탄치가 않았다. 특히 그는 ‘프로축구 승부 조작설’ 파문으로 향후 5년간 국내 프로무대에 설 자리를 잃었고 결국 중국행 비행기에 몸을 실었다.

99년 12월27일 정오. 그는 가족과 함께 다시 ‘사연 많은’ 김포공항을 빠져나가 독일행 비행기에 몸을 실었다. 26일 저녁 중국에서 귀향한지 24시간이 채 안되서였다.

“아내(오은미씨) 몸이 안좋아서 기약없이 프랑크푸르트로 떠납니다. 마침 큰 아들 두리가 방학이라 데리고 가려고 잠깐 입국했어요. 독일에서는 옛 친구들과 함께 지내면서 아내의 병을 치료하려고 해요. 스위스의 한 병원에 예약은 해뒀어요.”

끔찍한 애처가로 소문난 그는 이미 두달전 아내의 병이 악화되자 중국프로축구 선전 핑안팀의 지휘봉을 내놓기로 구단에 통보했었다. 국내에서는 ‘잘렸다’는 등 말이 많았지만 개의치 않는 표정이었다.

“말은 언제나 많은 법이지요, 뭐. 독일에 가면 모든 걸 잊고 편안히 쉬려고 합니다. 연말에는 독일 친구들과 밀레니엄 송년회 계획도 세워뒀어요. 새해 1월8일에는 옛 동료들과 함께 팬들 앞에서 실내축구 경기를 가질 예정이에요. 모두 나이가 들어 제대로 될지는 모르겠지만요.”

그는 감독직에서 공식적으로 물러난 뒤 한달동안 모처럼만의 휴식을 즐겼다.

“골프채를 10여년만에 다시 잡았어요. 예전에도 그랬지만 잘하는 건 아니고 배우는 단계예요. 이제 곧 필드에 나갈 계획인데 축구를 떠나 머리를 식힐 수 있어 좋아요.”

앞으로의 계획은 아무것도 없다. 무엇을 해야할지 구체적으로 생각해본 적도 없다. “모든 일이 올스톱이에요. 무슨 일을 해야할지 생각할 환경도 아니고 그러고 싶지도 않아요. 그냥 이대로 당분간 편하게 지내고 싶어요.”

차감독의 요즘 기쁨 중 하나는 중학교 1학년인 막내 세찌가 영어를 곧잘 하는 것. “아직 나이가 어려서 그런지 중국 국제학교에 다녔는데 영어를 금방 배우더라고요. 독일에서 언제 돌아올지 모르는데 영어라도 잘해야죠.”

차감독은 지금도 선수시절 입던 바지를 그대로 입고 ‘그 유명한’ 노트북 컴퓨터를 끼고 다닌다. 엄격한 자기관리는 세월이 지나도 변함이 없는 듯 했다.

〈배극인기자〉bae2150@donga.com

▼남기고 싶은 말▼

사람 사는 게 뭐 특별한 게 있나요. 올라가는 것도 어렵지만 올라갔을 때 이를 지켜내는 게 더 어려운 것 같아요.

저는 그동안 어떤 사람보다 팬의 사랑을 많이 받았고 그걸로 행복해요. 땀흘리고 수고했다고 다 열매를 거둘 수 있는 건 아니지만 그래도 저는 행복한 편이라고 주위에서 그러대요.

한국축구에 관해서는 제가 뭐라고 말할 수 있는 입장은 아닌 것 같아요. 다만 새천년에는 한국축구가 엘리트 육성에 심혈을 기울여야 하지 않나 하고 생각해봅니다. 중국이나 일본은 축구 저변이 워낙 넓고 그만큼 성장속도도 빨라요. 우리는 양으로 안되니까 질로 승부할 수밖에 없잖아요.

중요한 건 노력없이 되는 건 없고 모든 일은 반드시 그만큼의 대가를 지불해야 한다는 법칙이죠. 그런 마음가짐을 갖고 살면 한국축구나 사회나 모두 새천년엔 좀 더 희망을 가져볼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정리〓배극인기자〉bae2150@donga.com

▼그때 그시절▼

▽격세지감〓78년 12월 독일행을 처음 결정했을 때만 해도 나는 일부에서 조국을 버리고 떠나는 ‘매국노’ 취급을 받아야 했다.

자기만 잘 살려고 돈벌러 간다는 게 비난의 요지.

그러나 요즘 외국 나가는 선수는 외화를 벌어오고 국위를 선양하는 애국자로 대우받는다.

그만큼 국민의 정서가 크게 달라졌고 선수들의 활동 여건도 좋아진 것 같다.

▽먹어야 산다?〓독일에 처음 갔을 때 가장 먼저 부닥친 문제가 체력 유지였다.

매일 고기만 먹고 뛰는 독일 선수들을 당할 수 없어 독일가서 처음 몇달간은 하루 세끼 꼬박 스테이크만 먹었다.

나중엔 질려서 신물이 올라올 지경이었지만 ‘보약’이라 생각하고 눈감고 먹었는데 당시 20대 후반이었는데도 키가 2㎝나 더 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