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이 IMF체제를 졸업했다는 소식이 들린다. 지난 2년간 우리는 많은 것을 체험하고 깨달았다. 그중 하나를 꼽자면 앞으로 세상 살아가는 일이 결코 만만치 않으리라는 점이다. 세상살이의 고달픔이야 전에도 마찬가지였지만 그 강도(强度)면에서 비교가 되지 않을 것이라는 예감이 곳곳에서 전해진다. 경제가 차츰 나아지는 가운데도 미래에 대한 희망과 설렘보다 불안이 앞서는 것도 이 때문이다.
▽1999년이 저물어간다. 연말모임에서 화제의 초점은 단연 주식과 돈이었다. 자리에 앉아 나누는 얘기들이 온통 여기에 집중되다 보니 주식을 모르는 사람은 소외감을 느낄 수밖에 없었다. 올 한해를 돌아보아도 최고의 관심사는 역시 돈이었다. 주식 투자나 무슨 펀드로 얼마를 벌었다는 ‘무용담’이 쏟아졌다.
▽그동안 사람들은 돈의 위력을 실감했다. 그래서 ‘믿을 것은 돈 뿐’이라는 말이 설득력을 얻는다. 올해 ‘돈’ 열풍은 우리사회에 돈에 대한 집착현상이 훨씬 두드러졌음을 반영한다. 돈이 필요한 것은 최소한 인간답게 살기위한 여건과 한걸음 나아가 행복을 얻기 위해서라고 사람들은 얘기한다. 하지만 돈으로 행복을 얼마나 살 수 있을까. 미국인들의 실질 소득은 60년대에 비해 두배이상 늘었다고 한다. 그러나 자신이 행복하다고 느끼는 인구는 여전히 전체의 30%수준에 머물러 있다. 물질적 풍요와 사람들이 느끼는 행복감 사이에는 아주 미미한 상관관계밖에 없다는 것이 학계의 정설이다.
▽역설적일지 몰라도 IMF체제가 인도하는 깨달음은 돈과 경제성장이 모든 것을 해결해줄 것이라는 그릇된 믿음에서 벗어나는 것이어야 한다. 20세기를 마감하면서 지난 30여년간 숨가빴던 경제성장이 우리에게 무엇을 남겼는지 겸허한 마음으로 돌아보자. 그리고 저무는 태양 앞에서 우리 모두 두손을 모으고 무릎을 꿇자. 그리고 참회의 기도를 하자. 물신(物神)의 노예로 살아온 지난 날들을 반성하면서….
홍찬식〈논설위원〉chansik@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