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0년대에 북한이 어디로 갈 것인가 하는 예측의 중요한 단서는 ‘강성대국 건설’이라는 구호에 있다. 언뜻 듣기에 모험주의적 군사도발에 역점을 둘 것이라는 뉘앙스를 주지만 북한이 스스로 내린 ‘강성대국’의 정의는 다소 다르다. 강성대국이란 정치 사상 군사 경제에서 강력한 힘을 구축한 국가를 의미한다. 이미 정치 사상 군사적으로 강국이기 때문에 경제강국만 달성하면 강성대국을 이룩할 수 있다는 북한의 설명이다.
겉으로는 정치사상강국 군사강국 운운하지만 경제강국 건설이 사실상 강성대국의 핵심이라고 할 수 있다. 작년 11월 3일 평양에서 열린 ‘제2의 천리마대진군 선구자대회’에서 홍성남 총리는 “우리의 정치 사상적 위력과 군사적 위력은 이미 강성대국의 지위에 올라섰으며, 경제강국 건설의 목표를 점령할 수 있는 돌파구가 열렸다” 며 경제강국 건설만이 과제로 남아 있음을 강조했다. 그는 당 일꾼들이 “주체적 타산을 가지고 실리를 따져가면서 모든 공정을 현대적으로 개조해야 한다”며 ‘경제적 실용주의’와 ‘현대화’에 치중할 것임을 시사했다.
1990년대 북한이 경험한 경제적 위기는 체제의 존망을 위태롭게 할 수 있는 수준이었다. 문제는 어떻게 경제강국을 이룰 것이냐 하는 방법론에 있다.
얼마전 정주영씨 부자가 김정일 총비서를 면담한 자리에서 김정일이 박정희대통령의 근대화전략과 새마을운동을 칭송했다는 말이 전해져 화제를 불러일으켰다. 그래서 북한의 강성대국이 우리의 조국근대화와 유사한 부국강병 전략이며, 이를 달성하기 위해 과거 우리처럼 외부 자원에 의존하지 않을 수 없다는 추론이 간단하게 성립한다. 더욱이 북한이 내부 자원의 고갈로 심각한 경제난을 겪는 것은 주지의 사실이다.
북한은 21세기를 맞이해 외부 자원에 의존해 경제현대화에 박차를 가하는 정책적 변화를 보여줄 것인가. 이러한 전망은 아직 섣부른 것일 가능성이 크다. 우선 강성대국 건설 방식에서 북한은 전혀 변화된 모습을 보여주지 않는다. 북한은 요즘 ‘제2의 천리마대진군’이라는 구호아래 중공업 우선 정책을 다시금 강조한다. 게다가 ‘3대혁명 붉은기쟁취 운동’이나 ‘속도전’‘숨은 영웅 따라배우기 운동’도 강조한다. 50년대부터 80년대까지 북한식 경제발전 방식을 총망라하고 있는 것이다. 이러한 방식의 실패로 오늘날의 경제위기를 겪고 있는 데도 말이다.
북한의 강성대국 건설 선포가 98년 8월 미사일 발사와 때를 같이했다는 것은 결코 우연이 아니다. 북한이 강성대국을 건설하기 위해 외부의 지원을 필요로 하고, 이를 인식하고 있다면 외부에 대한 안보적 위협을 제기하는 미사일 발사와 같은 행동을 하지 않았을 것이다. 그것이 아니라면 북한의 미사일 발사는 외부에 위협을 가해 경제지원을 강요하려는 의도로 읽힐 수 있다. 그렇다면 강성대국 건설은 단순히 경제강국 건설에만 역점을 두는 전략은 아닌 것이다.
북한은 내부적으로든 외부적으로든 안보적 위협을 고조시켜 정치군사적 위기의식을 증폭시키는 방식에 익숙한 나라이다. 강성대국은 대내정치적으로는 ‘선군(先軍)정치’를, 대외안보적으로는 ‘군사제일주의’를 지향하는 가운데 경제회생을 시도하려는 이중전략으로 이해돼야 한다. 군사와 경제가 따로 노는 것이 아니라 긴밀하게 연관돼 있다. 60년대에 제기했던 ‘경제 국방 병진정책’의 재판인 듯 보이지만 당시 경제보다 국방에 역점을 두었던 것과는 대조적이다. 그렇다면 우리의 대북정책은 북한 당국의 경제에 대한 강조점을 활용해 경제정책의 변화를 유도할 수 있는 방향으로 설정돼야 하겠다.
류길재〈경남대 교수·북한대학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