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해 12월21일 오후 6시. 신촌세브란스병원 신경외과 이규창교수(62)는 두 시간의 수술을 마쳤다. 환자는 짐을 옮기다 뇌혈관이 터진 56세의 여성. 평소 수술은 짧게 잡아도 5∼6시간이 걸리지만 이날은 왠지 빨리 끝났다. 수술장갑을 벗으려는 순간, 수술실 문이 활짝 열렸다.
“2000회 수술을 축하합니다.”
후배교수와 간호사들이 케이크와 풍선을 들고 서있었다.
◇25년간 수술 2000여회, 생존율 96%…세계최고 수준◇
75년 국내 처음으로 현미경을 이용해 뇌혈관 수술을 시행한지 15년. 생존율 96%, 수술전 상태로 회복한 경우는 84%. 미국 신경외과학회지와 신경외과학 교과서엔 ‘코리아의 닥터리’가 세계에서 수술결과가 가장 좋다는 내용이 실려 있다.
▼사람 노릇은 못하지만…▼
이교수는 조카딸을 볼 때마다 지금도 미안하다.
97년 아버지를 심장병으로 잃은 조카딸의 결혼식 때 혼주 역할을 해야했지만 응급환자 때문에 못갔다. 장남임에도 차례를 못지낸 경우는 숱하다.
“푹 자고 제때 밥먹고 하루라도 좀 쉬고 싶습니다. 그러나 어떡합니까? 제가 맡는 환자는 90%가 촌각을 다투는 응급환자인데….”
한 달 평균 20명의 응급환자를 돌보는 그는 환자가 없으면 오히려 안달복달한다. 병실과 응급실을 돌아다녀야 직성이 풀린다. “구내식당에서 의대 교수들이 함께 밥먹을 때 유난히 급히 먹는 사람을 찾으면 필경 신경외과 의사일 것”이라고 말했다.
이교수는 오전에 수술이 잡혀있으면 전날 밤부터 물을 마시지 않는다. 수술 중 소변을 피하기 위해서다. 밤에 수술이 있는 경우엔 연구실에서 문을 걸어 잠그고 30분쯤 자서 최상의 컨디션을 유지한다. 늘 잠이 부족했기 때문에 언제 어디서든지 눈만 감으면 자는 ‘기술’을 터득했다.
▼바르게 걸으면 길이 보인다▼
이교수는 “긍정적 사고는 성공 뿐 아니라 건강도 보증한다”고 말한다. 그는 남들이 ‘쯧쯧’하면서 위로하는 순간들을 성공의 디딤돌로 삼았다.
대학 졸업 때 동기생의 상당수는 군 입대 대신 미국으로 떠났다. 이교수도 미국 의사면허시험자격이 있었지만 가지 않았다. 야당정치인이었던 선친 이만종씨가 암으로 투병하고 있었기 때문.
그는 훈련소 생활이 ‘낙원’이었다고 돌이킨다. 입대 전 병원에선 새우잠에 늘 대기상태였지만 훈련소에선 규칙적으로 먹고 잘 수 있었다. 군에서 그는 건강과 자신감을 얻었다.
월남전에도 참전했다. 맹호사단 지원 후송병원에선 사흘 동안 한잠도 안자고 30여명의 환자를 돌 본 적도 있다. 죽음의 전장도 그에겐 삶의 밑거름이 됐다. 헬기로 5분 거리에 있는 미국병원의 신경과 의사와 주말 교대근무를 하면서 선진 의료기술을 배웠으며 무공훈장을 받아 늘어난 퇴직금 200만원으로 집을 살 수 있었다.
이교수는 72년 독일 막스프랑크 뇌연구소에 장학생으로 유학, 0.05㎜의 뇌세포에 전극을 꽂고 동물의 뇌가 자극에 따라 어떻게 변하는지 연구했다. 스위스의 야사길박사가 현미경으로 뇌동맥류 환자를 수술한다는 소식을 듣고 달려가 뇌연구소에서 미세(微細)세계에 푹 빠졌던 경험은 누구보다 빨리 수술법을 배우는 바탕이 됐다.
▼그와 가족의 건강법▼
이교수의 스틀스 해소법은 단순하다. 이교수는 틈날 때 마다 먹고 푹 자는 방법으로 피로와 스트레스를 풀고 건강을 지켜왔다. 음식은 가리지 않고 골고루 먹는 편.
새벽에 일어나자마자 토마토를 잘라 소금을 약간 쳐서 콘 플레이크와 곁들여 먹고 저녁엔 사과를 먹는다. 몇 년 전부터 콜레스테롤 수치가 200이 넘어서 삼겹살을 비롯한 육류는 배불리 먹지 않도록 애쓴다.
◇가족 혈압도 항상 체크 "일에 만족하는 것이 보약"◇
92년과 지난해 8월 병원에 검사비를 내고 자기공명혈관촬영(MRA)을 했다. 뇌혈관질환을 보는 의사가 뇌혈관질환에 걸려서는 안되기 때문이다.
“혈압이 높거나 가족 중 뇌졸중 환자가 있다면 빚을 내서라도 MRA를 찍어보는 것이 좋다”고 이교수는 권한다. MRA는 비싼 것이 흠. 머리만 찍으면 53만원, 목까지 함께 찍으면 110만원. 50대까지는 출혈성이 많으므로 머리만 찍어도 되지만 60대 이상은 혈관이 막힌 경우가 많아 목까지 찍는 것이 좋다.
이교수는 집에 혈압기를 사놓고 가족끼리 수시로 혈압을 재도록 하고 있다. 혈압계는 돌연사를 막는데 필수다.
“무엇보다 자기 일에 충실하며 만족감을 갖는 것이 최고 보약입니다. 자신의 일터와 일에 불평하는 사람이 건강해질 순 없습니다.”
stein33@donga.com
▼환자에게▼
뇌혈관질환 사망률은 97년 현재 10만명당 73.5명으로 국내 1위. 2위인 교통사고(33.5명)의 두 배 이상이다.
이규창교수는 “뇌출혈은 고혈압을 방치해서 생기는 경우가 많다”면서 “고혈압은 병이 아니므로 운동으로 쉽게 호전된다고 착각하는 사람이 많은데 사실은 혈압이 높으면 담배를 끊고 치료를 받아야 한다”고 말한다.
헬스클럽에서 운동하다가, 전화로 충격적 얘기를 듣고, 또는 말싸움하다 쓰러진 경우, 그리고 상가에서 곡을 하다 쓰러지거나 성관계 중 갑자기 쓰러진 경우에 주위에서 무작정 눕혀서 쉬도록 하면 ‘살 사람’도 죽이게 된다. 곧바로 병원으로 옮겨야 한다. 특히 복상사(腹上死)의 경우 심근경색보다 뇌출혈이 많다.
이교수가 주로 맡는 수술은 뇌혈관의 일부가 꽈리처럼 부풀어 오르는 뇌동맥류. 인구의 2∼5%가 걸려 있으며 10만명 중 15명이 출혈로 병원을 찾는다. 그러나 핏줄이 터지면 30∼40%는 병원에 오기 전 숨을 거둔다.
혈관이 살짝 터졌을 경우 바로 치료받으면 90% 이상 정생생활이 가능. 환자가 머리에서 ‘찡’한 느낌이 들며 터질 듯 아프거나, 등줄기로 ‘지르르’ 무엇인가 흐르는 느낌이 들면서 식은땀이 난다고 호소하면 즉시 119로 연락해 병원으로 옮겨야 한다.
이교수는 “뇌혈관이 부풀어 올라도 터지지 않은 상태에서 치료받으면 출혈을 피할 수 있다”면서 “정기적인 뇌검사가 그래서 중요한 것”이라고 말했다.
stein33@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