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8시간 이상 무리하게 구조 작업을 벌이다 숨진 119구조대원의 유족이 “인명을 구하는구조대원의 목숨도 소중하다”며 정부를 상대로 손해배상 청구소송을 냈다. 98년 지리산 수해 참사때 인명구조작업중 급류에 휘말려 숨진 경남 사천소방서 119구조대 이정근(李政根)대장과 이내원(李來遠)계장의 유족들은 5일 이같은 이유로 정부에 2억9300만원을 청구하는 소송을 서울지법에 냈다.
이 소송은 그동안 살신성인(殺身成仁)의 임무수행만을 요구받아온 소방관의 유족들이 개인의 권리를 주장하며 정부에 책임을 묻는 것이어서 위험한 업무를 수행하는 경찰 등 다른 공무원에게도 영향을 줄 것으로 보인다.
원고측은 소장에서 “정부는 평소 119구조대원에 대한 안전관리와 감독을 소홀히 했고 극히 위험하고 체력 소모가 심한 인명 구조작업을 쉬지 않고 18시간 30분간 계속하도록 방치한 사무집행상의 잘못을 저질렀다”고 주장했다.
숨진 이대장과 이계장은 98년 8월1일 오전 1시 반경부터 오후 6시경까지 경남 하동군 덕천강변에서 식사도 제대로 하지 못한 채 야영객 8명을 구하고 부상자 11명을 이송하는 한편 시체 7구와 차량 5대를 인양하는 등 구조작업을 벌이다 힘이 떨어져 물에 빠져 숨졌다.
유족들은 “정부가 위험한 구조작업을 벌이는 119대원의 인원을 충분히 확보해 적절히 교대근무를 시켜주고 각종 최신 장비를 지원하는 등 재난구조 체계를 착실히 세웠으면 발생하지 않았을 사고였다”고 주장했다.
원고측 강용석(康容碩)변호사는 “정부는 ‘훈장과 국가유공자’라는 명예만으로 가장(家長)을 잃은 가족의 슬픔을 달랠 수 있다는 생각을 버려야 한다”며 “국민의 생명을 위해 헌신하다 순직한 공무원들의 처우 문제 등을 근본적으로 따지려고 소송을 냈다”고 말했다.
강변호사는 “소송 결과에 따라 ‘소방관 유가족 협회’ 등 관련 단체나 순직한 공무원 유가족의 소송이 잇따를 것으로 전망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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