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비디오로 나온 ‘센스 오브 스노(Sense Of Snow)’는 영화 ‘정복자 펠레’로 잘 알려진 덴마크 감독 빌 어거스트의 작품. 덴마크 소설가 페터 회의 ‘눈에 대한 스밀라의 감각’이 원작인 이 영화는 빌 어거스트의 영화 중 보기 드문 액션 스릴러다.
빙하를 연구하는 과학자 스밀라(줄리아 오몬드 분)는 경찰이 사고사로 단정한 이웃 소년 이사야의 죽음에서 석연치 않은 점을 발견한다. 스밀라는 눈에 대한 지식을 바탕으로 죽음의 비밀을 파헤치고, 결국 부를 위해 무고한 사람을 희생시킨 거대 기업의 탐욕과 마주친다.
거장의 솜씨답게 영화의 전개는 매끈하다. 북유럽의 정취가 물씬한 청회색 영상은 싸늘하면서도 아름답다. 그러나 영화를 보면서 갖게 되는 한 가지 의문. 왜 스밀라는 목숨을 걸고 죽음의 비밀을 파헤칠 결심을 하게 됐을까?
에스키모의 딸인 스밀라와 에스키모 출신 소년 이사야는 고향 그린랜드에 대한 동경을 공유하고 있다. 어머니가 죽고 대도시에 온 뒤 어디에도 적응하지 못했던 스밀라는 눈과 얼음, 숫자에만 집착한다. 어린 시절에 대한 스밀라의 회상에는 인간이 자연과 분리되지 않은 그린란드에 대한 향수가 아련하게 묻어 있다. 이사야에게서 뿌리를 잃어버린 자신의 모습을 발견한 스밀라는 죽음의 원인 규명을 통해 이사야의 영혼이 편히 쉴 수 있기를 갈구한다.
그러나 소년과 원시에의 동경을 나눠 가졌던 스밀라의 내면에 대한 묘사는 영화 중반 이후 사라져버린다. 칸 국제영화제가 두 번이나 황금종려상을 헌사한 거장인 빌 어거스트 감독도 할리우드식 영화의 스케일에 매료됐던 것일까. 초반 매력적인 미스터리의 분위기가 물씬하던 이 영화는 아쉽게도 스밀라의 시들한 모험담으로 변해버리고 만다. 출시사 DMV.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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