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부치 게이조(小淵惠三) 일본총리의 발걸음이 새해 벽두부터 분주하다.
오부치총리는 10일부터 캄보디아 라오스 태국을 방문하고 있다. 일본 총리의 캄보디아 방문은 43년, 라오스 방문은 33년만의 일이다. 총리실은 “총리의 이번 순방은 7월 오키나와(沖繩)에서 열릴 선진 8개국(G8)정상회담에서 제시할 아시아의 입장을 조율하는 데 초점이 맞춰질 것”이라고 밝혔다. 뿐만 아니다. 오부치총리는 4월22일 호주 뉴질랜드 등 16개 국가로 구성된 남태평양국가회의(SPF) 정상들을 도쿄(東京)로 초청해 회의를 연다. 이 회의도 G8정상회담을 앞두고 남태평양지역의 의견을 집약하기 위한 것이다.
정치인만 오고가는 게 아니다. 3, 4월에는 오키나와 무용단이 G8 회원국인 미국 영국 프랑스 독일 등에서 기념 공연을 갖는다.
일본의 이런 행보는 오키나와 G8정상회담 의장국으로서의 사전준비일 것이다. 다만 그 준비가 전례 없이 요란하고 분명하다는 인상을 준다. 일본이 G7 또는 G8 정상회담의 의장국이 되는 것은 이번으로 세번째지만 이번처럼 다각도로 준비한 일은 없었다.
일본은 아시아에서 유일한 G8 회원국이다. 아시아의 목소리를 일본이 대변해야 할 처지인 것이 사실이다. 한국이나 중국도 일본이 그런 역할을 해주기를 기대하는 경우가 있다. 오부치총리도 연두기자회견에서 “G8정상회담에서는 글로벌한 관점에서 아시아의 관심도 충분히 반영해 밝고 힘있는 메시지를 세계에 전하고 싶다”고 말했다.
그러나 일본은 아시아의 대변자를 뛰어넘는 그 무엇을 생각하는 것도 같다. 흔한 말로 ‘아시아의 맹주’일까, 그 이상일까. 중국의 부상(浮上)과 일본의 위축이라는 새로운 도전에 직면한 일본의 21세기를 주목하고 싶다.
심규선 ksshim@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