간암 말기 환자인 김모씨는 98년 10월 A종합병원에 두 달간 입원하면서 타고시드 등 암에 좋다는 최신 치료제를 모두 썼다. ‘나중에 환불을 요구하지 않겠다’는 내용의 서약서를 쓰고 의료보험 적용을 받을 수 있는 약 보다 몇 배 비싼 돈을 지불했다.
그러나 김씨는 석달 뒤 세상을 떠났고 김씨의 가족은 1년 뒤 의료보험연합회를 통해 병원에서 300여만원을 돌려받았다. 보험적용이 되지 않는다고 법으로 지정하지 않은 ‘미지정 비보험 치료비’는 전액 환불받을 수 있다는 규정 덕분.
요즘 종합병원의 보험심사계 직원들은 돈을 환불해가는 환자가 한 달 최소 한 두명 생겨서 고민이다. B종합병원 K씨는 “비급여 진료비중 일부 또는 전액 환불이 가능하다는 사실을 아는 환자가 지금은 극소수지만 조만간 ‘내 돈도 내놓으라’는 환자들이 몰려들 것”이라며 걱정했다.
▽원인 정부는 1978년 의료보험제도를 도입하면서 당시 평균 진료비의 절반 이하의 가격으로 보험수가를 책정했다. 문제는 1,2년 뒤 수가를 현실화시켜 주겠다는 정부의 약속이 22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지켜지지 않고 있다는 것.
이때부터 병원들은 임의로 보험적용이 되지 않는 비급여 항목을 신설하거나 급여항목을 비급여로 속이는 탈법을 통해 재정적자를 보전하기 시작했다. 설렁탕값을 묶어두면 맛과 질이 떨어지는 고기를 쓰거나 밥값 깍두기값을 따로 받는 것과 마찬가지.
Y병원 한 관계자는 “의료행위중 보험에 해당된 것은 50%이며 나머지 50%중 법적으로 허용된 비보험 항목은 10%뿐”이라며 “이 때문에 탈법적인 비보험 의료행위가 만연, 모든 의사들을 범죄자로 만드는 왜곡된 구조가 됐다”고 지적했다.
▽실태 및 문제점 연세대 의대 한광협교수는 “효과가 뛰어난 신재료나 신치료법을 쓰는 것이 ‘불법’이기 때문에 환자가 재료를 직접 구해야만 치료가 가능한 것이 현실”이라며 의료보험법이 결과적으로 의학 발전을 퇴보시킨다고 지적했다.
같은 병원 K교수도 효과는 좋지만 법적 비급여 항목으로 지정되지 않은 척추수술 재료를 환자에게 직접 사오도록 한뒤 수술해주고 ‘시술료’만 받는다. 환자를 위해 좋은 재료를 쓴 죄로 범죄자가 될 수는 없다는 것이 그 이유. 백내장도 2년전 개발된 ‘4mm 절개법’으로 수술을 받기 위해선 환자가 수술칼 두 개를 사와야 한다. 수술칼 하나만이 보험적용을 받을 수 있기 때문.
이처럼 법에서 지정하지 않아 보험적용을 받을 수 없는 항목은 입원 환자가 부담하는 의료비의 평균 10∼20% 정도. 분야별로는 상대적으로 고급 재료와 신기술이 요구되는 심장내과가 40%로 가장 많고 소아과가 5%로 가장 적다.
문제는 마취제인 아이소플로레인, 심장환자에게 사용되는 산화마그네슘 등 실제로 많이 사용되는 약물이 보험적용도 되지 않으며 법적으로 지정된 16개 비보험 항목에 포함되지 않는다는 점.
신현호(申鉉昊)변호사는 “아픈 환자는 돈과 상관없이 치료를 받도록 하루빨리 ‘치료 접근권’을 보장하고 고급 치료를 받고 싶은 환자는 비싼 비급여 치료를 받을 수 있도록 ‘치료선택권’을 줘야 한다”고 주장했다.
의료사고가족협의회 간부인 N씨(37)는 “10여년간 의료사고를 접수하면서 환자 가족들로부터 과도한 병원비에 대한 불만을 많이 들었다”며 “지나치게 비싼 치료비를 돌려받을 수 있다는 점은 반갑지만 이번 판결로 의료행위가 위축돼 질좋은 의료서비스를 못받는 일은 없어야 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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