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들은 그를 ‘괴짜’라고 한다. 마운드에서의 카리스마적 이미지, 독특한 헤어스타일, 무뚝뚝하면서 직선적인 성격….
하지만 그를 가까이서 지켜본 이들은 “그렇게 착하고 솔직할 수가 없다”고 입을 모은다. 한국 프로야구선수 출신으론 처음으로 메이저리그에 진출한 보스턴 레드삭스의 이상훈(29).일본에서의 안정적인 생활을 포기하고 ‘꿈을 찾아’ 미국프로야구 무대에 뛰어든 그를 만나봤다.
-미국 야구에 대한 꿈은 언제부터 가졌나.
“초등학교에서 야구할 때 하루는 선생님이 메이저리그 비디오를 보여주더니 감상문을 적어오라고 했다. 가만히 보니까 선수들이 평범한 것은 ‘알을 까고’ 도저히 아웃시킬 수 없는 공은 잡아내기에 ‘메이저리그 선수들은 평범한 건 못하고 어려운 건 잘한다’고 써낸 기억이 난다. 구체적으로 미국 야구에 대해 생각한 건 프로에 입단한 신인 때였다. 교육리그에 참가하고 돌아온 감독 코치분들이 미국 야구를 설명하는 데 ‘도대체 메이저리그가 뭐기에 저럴까’하는 생각이 들었다. 이때부터 ‘나도 언젠가는 그 무대를 밟아야겠다’는 꿈을 갖게 됐다.”
-한국 일본 미국 프로야구를 거치는 최초의 케이스가 됐고 한국프로출신 첫번째 선수인데 부담스럽진 않은가.
“사실 겁이 난다. 하지만 한국에서도 마운드에 오르기 전엔 겁났고 시즌을 앞두고 항상 걱정을 했다. 일본에서도 마찬가지였다. 중요한 건 내 스타일을 지키는 거다. 운동선수에겐 기량 위에 정신력이 있다. ‘칠테면 쳐봐라’는 식의 오기와 자존심이 실력을 만든다. 작년에 일본에서 통한 이유가 바로 그것이었다. 사실 일본에 가기 전이나 지금이나 실력은 비슷하다. 폼도 비슷하고 구질도 똑같고…. 작년엔 자신감을 갖고 던졌다. 메이저리거들이 잘하면 얼마나 잘하고 못하면 얼마나 못하겠는가. 일단 도전한다는 게 중요하다.”
-반항아적인 이미지가 강한데….
“어렸을 적 환경이 성격 형성에 많은 영향을 끼친 것 같다. 어려서 핏줄다른 형제들과 같이 사는 등 집안이 아무튼 복잡했다. 중학교 2학년 때 아버님이 돌아가시면서부터는 집안살림도 아주 어려워졌고…. 어려서부터 나 자신이 생존하는 방법을 찾아야 했다. 야구할 때 누가 나한테 시비걸면 그 병으로 ‘깰려고’ 가방에 항상 병을 하나갖고 다녔다.의식적으로 강하게 보이려다 보니까 주위 사람들로부터 오해도 많이 받았다.”
-고려대시절 너무 자주 도망다녀 ‘빠삐용’이란 별명이 붙을 걸로 아는데….
“14번 정도 합숙소에서 뛰쳐 나간 걸로 기억한다. 주로 부산에 갔는데 돈이 없어 제주도는 못갔다. 지금 생각하면 사춘기였던 것 같다. 야구가 싫어서 도망간 건 아니고 빨리 돈을 벌어야겠다는 생각을 했다. 합숙소에서 나가면 막노동판에서 잡일을 하며 먹고 자고 했다. 작고하신 최남수감독님이 당시 나를 찾아다니느라 고생 많이 하셨다.”
-돈에 대한 집착을 많이 했다고 하는데 프로에서 받은 계약금으론 뭘 처음 했나.
“어머니하고 뭘 할까 고민하다가 집을 사는 게 낫다고 판단해 계약금으로 받은 1억8800만원으로 개포동에 23평짜리 주공아파트를 샀다.1억2550만원 짜리였는데 나머지는 빚 갚는데 썼고 연봉 1200만원으로 1년 동안 생활했다.”
-자신의 야구관은….
“야구는 구장에 돈 주고 찾아온 팬들, 전기요금 내고 TV로 야구보는 시청자들, 라디오로 중계듣는 청취자들에게 대리만족을 시켜주는 것이다.내가 야구하면서 상을 받든가, 남들에게 어떤 이미지로 비쳐지는가 하는 것은 상관 안한다.”
그는 마지막으로 “머리는 어떻게 관리하느냐”고 묻자 “남들이 생각하는 것 만큼 그렇게 신경쓰지 않으며 1년에 미용실 두 번정도 가고 매일 머리 감는 건 남들과 똑같다”며 피식 웃었다.
ssoo@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