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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영화]비상근무/구원받지 못하는 '구원의 천사'

입력 | 2000-01-14 08:05:00


“난 구급대원이 아니라 불운한 죽음의 목격자일 뿐이야.”

주인공 프랭크(니컬러스 케이지 분)의 우울한 독백처럼, ‘비상근무’는 구조(救助)를 직업으로 하면서도 막상 죽음 앞에서는 속수무책인 한 야간 구급대원의 정신적 혼란과 구원에 이르는 과정을 그린 영화다.

감독은 미국 현대영화의 거장으로 손꼽히는 마틴 스코시즈. ‘택시 드라이버’ ‘분노의 주먹’ 등에서 스코시즈와 함께 일했던 폴 슈레이더가 시나리오를 썼다.

화려한 영광의 도시 뉴욕. 이 도시의 어딘가에 행복한 일이 왜 없겠는가. 그러나 영화는 줄곧 누군가가 마약과 총기사고, 심장마비로 죽어가는 뉴욕의 지옥같은 밤거리에 초점을 맞춘다. 자신의 실수로 한 소녀를 죽게 했다는 죄책감에 시달리는 프랭크는 악몽과도 같은 이 거리에서 지쳐 탈출을 꿈꾼다.

몽유병자처럼 풀린 니컬러스 케이지의 눈빛은 ‘라스베가스를 떠나며’에서의 그의 연기를 연상시킨다.이 영화는 스코시즈 감독의 전작 ‘택시 드라이버’와 무척 닮았다. ‘택시 드라이버’의 트래비스(로버트 드니로)와 이 영화의 프랭크는 둘 다 살벌한 뉴욕의 밤거리를 쏘다니며 불면증에 시달린다. 그러나 프랭크는 한결 성숙하고 분노를 누그러뜨린 트래비스다. 트래비스가 편집증적인 폭력을 통해 구원을 꿈꾼 반면, 프랭크는 길바닥에서 손을 내미는 유령들을 구해주는 그의 환각에서도 보여지듯, 선한 방식을 통한 구원을 갈망한다.

시종 어두컴컴한 ‘비상근무’는 기승전결의 극적 구성에 익숙한 관객들에겐 몹시 지루한 영화다. 구급차가 도시의 밤거리를 가로질러가듯, 영화는 구체적인 플롯 없이 프랭크의 혼란스러운 의식을 가로지른다. 결말에서 프랭크는 소망을 이루고 안식을 찾지만, 그의 혼곤한 내면에 주목해온 관객들에겐 이조차도 세상과의 무기력한 화해 정도로 보일 뿐이다. 그러나 줄곧 ‘비참한 거리’에서의 구원이란 어떻게 가능한 것인지를 질문해온 스코시즈의 영화 팬이라면, 그의 전작들과 비교해 음미해볼 만하다.

susanna@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