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인종전시장' 머렉 콘 지음/대원사 펴냄 ▼
인종문제를 잘못 건드렸다간 곧바로 사회에서 매장당하는 것이 요즘의 현실이다. 하지만 영국 서섹서스대에서 신경생물학을 전공하고 현재 칼럼니스트로 활동중인 저자는 인종과학의 부활을 우려한다.
‘인종과학’이란 ‘인종주의’를 과학적으로 뒷받침해 주는 학문이라고 할 수 있다. ‘인종주의’는 인간의 신체적 또는 정신적 능력에 차이가 있음을 주장하고 나아가 인종간의 차이를 이유로 한 폭력, 증오, 편견, 차별 등을 합리화하기도 한다.
생물학적 서열에 기초를 둔 전체주의 사회질서 체제였던 나치 정권은 유태인 학살이라는 지울 수 없는 상처를 인간의 역사에 남겼고 이로 인해 나치 멸망 후 인종주의는 더 이상 발붙일 곳이 없을 것만 같았다. 그리고 흑인이든 백인이든 황인이든 모두 한 표의 투표권을 행사하는 사회에서 인종주의적인 발언은 금기시 됐다.
그러나 사람들이 유엔에서 아무리 목청을 높여 ‘반인종주의’를 외친다 해도 그 목소리가 닿지 못하는 곳은 너무도 많다. 공식적으로는 반인종주의를 주장하는 말들이 당연하게 여겨지면서도 인종 차별로 인한 갈등은 세계 곳곳에서 끊이지 않고 일어나고 있다.
저자는 인종주의적인 편견과 무관하게 수행되고 있는 듯한 지능지수 테스트, 우생학이론, 유전공학 등이 또 다른 형태의 인종과학이며 이것은 20세기를 지배했던 인종차별을 부활시키는 기반을 형성하고 있다고 주장한다.
“인간 게놈 프로젝트의 목적은 인간에 대한 전체 DNA코드의 견본을 작성하는 것이다. 하지만 그것은 실제의 어느 개인이 아니라 수천 개의 표본에서 뽑아내게 될 것이다. 표본의 대부분은 유럽계에서 뽑았으며 연구 대부분을 수행할 지역의 인구를 반영하고 있다.”
이미 거대한 인간 게놈 프로젝트에 인종주의적 편견이 반영되고 있다는 것이다. 어떤 학자들은 DNA에서 모계의 기록이 담겨 있음을 주장하고, 어떤 이들은 흑인과 백인의 근육조직에서 뚜렷한 차이가 있음을 지적하기도 한다. 저자는 이러한 인종적 차이가 과학적으로 증명된다 해도 그것이 사회적 차이나 차별의 근거로 이용될 수 없음을 강조한다.
저자가 인용한 ‘이코노미스트’지의 신자유주의 경제학적 세계관을 보면 신자유주의와 인종주의 사이의 어떠한 연계 가능성도 찾아볼 수 없을 듯하다. “이 세계관은 스스로를 돌보는 개인의 능력을 믿기 때문에 인간의 잠재력에 관해 근본적인 낙관주의에 의존하고 있고, 신자유주의 경제처럼 역동적인 경제는 필요에 따라 노동자를 채용하고 해고할 필요가 있으며 성별이나 인종에 관계없이 인적 자원의 풀에 의존한다”는 것이다.
그러나 역사적으로 인종주의는 자유주의 경제체제에서의 특정 집단간 빈부차이를 합리화하는 이론으로 이용돼 왔음을 부정할 수 없다.
저자는 “신자유주의가 정치계와 경제계를 접수했던 같은 시기 동안 신자유주의의 사촌인 사회생물학이 과학 내에서 입지를 강화했다”고 지적한다. 이수정 옮김, 408쪽 1만2000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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