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관순씨(26)가 박성민씨(34)의 프로포즈를 받은 것은 작년 2월이었다. 김씨와 같은 영화제작사에 있던 박씨는 기울어져 가는 회사를 떠나며 홀연 “당신을 찜해 놨었다”고 말했다. 그 때까지 두 사람은 한번도 교제한 적이 없었다. 김씨는 ‘잘나가는’ 광고회사 기획자와 3개월째 교제 중이었고 그 남자는 때마침 유럽 배낭여행 중이었다.
김씨는 황당한 마음이 드는 한편 ‘나이도 많은 사람이 어리디 어린 나에게 프로포즈할 때는 용기를 살만하다’고 생각했다. 고민이었다. 박씨는 무직이었고 키는 1m67에 ‘그냥 인상은 좋은’ 평범한 중산층 집안. 게다가 장남. 김씨가 몸담았던 영화제작사는 자금줄이 막혀 곧 문을 닫았다. 두사람은 실직상태에서 6월 결혼식을 올렸다. 김씨는 박씨의 좋은 인상과 한번도 화내는 모습을 보이지 않는 가공할 인내심에 명운을 걸었다.
결혼 직후 남편과 김씨는 국민연금을 해지하고 각기 400만원과 30만원을 마련, 종자돈 삼아 인생에 대한 투자를 시작했다.
남편은 갑자기 한 케이블TV의 사업계획서 작성작업에 아르바이트로 참여해 일거에 500만원을 벌어왔다. 여름이 되자 외국 금융사의 에이전트회사에 취직해 적지 않은 연봉을 받게 됐다. 김씨는 남편 취직 보름만에 인터넷 결혼정보 제공업체인 닥스클럽㈜(www.daksclub.co.kr)에 커플매니저로 입사해 100주를 우리사주 형태로 받았다. 조만간 스톡옵션까지 받을 전망.
남편은 자취 시절 노하우를 십분 활용, 매일 아침 영양의 균형을 고려한 식단에 따라 도시락을 싸준다. 빨래 다림질과 함께 저녁식사의 대부분을 도맡는다. 김씨의 속옷은 따로 모아 손으로 빤다.
김씨는 올 봄 영화 시나리오 공모전을 앞두고 작품을 준비 중이다. 이란성 쌍둥이인 청각장애인 여자 아이가 운동권 출신의 젊은 스님과 정신적 사랑을 나누는 내용. 남편은 ‘나이들고 고집불통인 스님으로 바꿔야 한다’고 강력히 조언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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