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철도원’은 눈처럼 하얀 영화다. 눈이 많이 내리기로 유명한 일본 홋카이도에서 촬영된 이 작품의 화면은 온통 흰색으로 덮여 있다. 백설(白雪) 사이를 골동품이나 다름없는 한 량 짜리 낡은 기차가 ‘푸우우’ 신음을 토하며 달린다. ‘러브 레터’(이와이 순지 감독)의 눈이 순수한 청춘을 위한 배경색으로 존재한다면, ‘철도원’의 눈은 정년퇴임을 앞둔 역장 사토(다카쿠라 켄 분)로 상징되는 황혼세대를 더 외롭고 쓸쓸하게 만드는 빛깔이다.
홋카이도 시골의 역장인 사토는 17년 전 하나 뿐인 딸 유키코와 2년 전 아내 시즈에(오타케 시노부)를 잃을 때도 직무에 충실하기 위해 역을 떠나지 않았다. 이용객이 없어 역의 폐지가 결정되고 정념퇴임이 임박하지만 여전히 역을 지키던 그는 죽은 딸과 이름이 같은 소녀(히로세 료코)를 만난다.
가족도 외면한 채 일에만 매달리는 사토의 모습이 비현실적이라는 비판을 받고 있지만 영화는 감동적이다. 특히 이 작품으로 1999년 몬트리올 영화제에서 남우주연상을 수상한 일본의 국민배우 켄이 눈물을 꾹꾹 가슴 속에 채워두는 장면은 가슴 뭉클하다.
이 영화의 한국 개봉을 앞두고 내한한 후루하타 야스오 감독은 20일 오전 서울 중구 예장동 남산감독협회 시사실에서 기자회견을 갖고 “사토는 일터에서 쫓겨나는 일본의 나이 든 세대의 모습이자 오늘날의 아버지 상”이라면서 “일본 영화가 할리우드 영화에 밀려나는 상황 속에서도 ‘철도원’이 흥행에 성공한 것은 이같은 모습이 공감대를 얻은 것 아니겠느냐”고 말했다.
그는 또 22일 일본 전국의 150여개 극장에서 개봉되는 한국영화 ‘쉬리’와 ‘철도원’의 인연은 각별하다고 밝혔다. ‘쉬리’는 지난해 전국기준 관객 579만명을 기록하며 역대 한국 영화 흥행 1위를 기록했고, ‘철도원’도 일본에서 450만명(전국기준)의 관객을 끌며 일본 영화 흥행 1위에 올랐다. 야스오 감독은 “‘쉬리’는 남북분단 속에서, 또 ‘철도원’은 나이 든 세대의 비극 속에서 태어났다는 점에서 공통적으로 인간의 고통을 다루고 있다”고 말했다. ‘철도원’의 원작은 97년 나오키상 수상작인 같은 이름의 소설로 국내에서도 이미 출간돼 베스트셀러 순위에 오른 바 있다. 전체 연령 관람가. 2월4일 개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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