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의 정보통신혁명-오명의 리더십 연구' 김정수 지음/나남출판▼
디지털 시대의 초입에 선 우리의 착각 중의 하나는 ‘디지털 시대는 자본과 경험이 없어도 아이디어만 있으면 떼돈을 쉽게 벌 수 있는 엘도라도’라는 것이다. 그러나 ‘아이디어 만능론’은 허상이다. 지금이야말로 그 어느 때보다도 강력한 리더십이 요구되는 때라고 할 수 있다.
게임의 룰조차 아직 존재하지 않는 무한경쟁의 디지털 글로벌 사회에서 키워드는 바로 ‘변화와 적응’이다. 혼돈과 불확실성 속에서 ‘변화’를 예측함은 바로 ‘비전’을 만들어 내는 것이며 ‘적응’을 한다는 것은 바로 비전을 현실화할 수 있는 강력하고 스피디한 실천력을 의미한다. 따라서 디지털 시대 리더가 갖춰야 할 가장 중요한 덕목은 ‘비전’과 ‘실천력’이다.
이 책 ‘한국의 정보통신혁명’은 디지털 시대 리더의 모습을 ‘오명’이란 한 선각자의 모습을 통해 보여주고 있다. 부제는 ‘오명의 리더십 연구’. 저자 김정수교수(고려대 경제행정학부)가 머리말에서 표현한대로 ‘80년대 통신혁명의 지휘자’인 오명 현 동아일보사장의 리더십에 대한 연구보고서다.
지금은 필자를 포함한 누구나 ‘디지털’‘인터넷’의 중요성에 대해서 한마디씩 하곤 하지만 오명이 체신부 장차관으로 재임(1981∼88년)하며 정보통신혁명의 기틀을 놓던 시절의 한국은 연줄없이는 전화기 한 대도 제대로 놓을 수 없던 통신 후진국이었다. 이런 시절에 오명은 이미 ‘컴퓨터와 통신망의 결합’‘데이터통신 전담회사인 데이콤의 설립’이라는 ‘비전’을 제시했다.
80년대 한국사회의 정보통신 수준이나 지적 몰이해 속에서 오명은 자칫하면 비전을 인정받지 못해 한낱 몽상가로 침몰할 수도 있었다. 그러나 강력한 리더십과 의지로 자신의 비전을 실천에 옮겼다. 그것도 기업이 아닌 거대한 관료조직을 움직여서였다. 디지털시대 리더의 덕목인 ‘비전과 실천력’을 오명이란 선각자에게서 확인할 수 있는 대목이다.
1981년의 ‘전자공업 육성을 위한 장기정책’부터 시작해 국산 전전자식 교환기 TDX개발, 데이콤 설립등 오명이 이룬 성취는 ‘디지털 인프라 구축’이라는 거대한 밑그림을 통해 치밀하게 연결되는 것이다.
필자는 한국의 PC통신 1세대다. 겨우 100여명이었던 1세대는 오사장이 설립을 주도했던 데이콤이 개설한 최초의 PC통신 H-Mail(천리안의 전신)에서 ID를 부여받아 형성됐다. 그 100명의 씨앗이 지금 500만명으로 불어나 일본을 능가하고 있다.
한국의 1세대 디지털 리더 오명은 ‘산업혁명은 뒤졌어도 정보혁명은 앞서자’는 꿈같은 얘기를 실현해낼 기틀을 마련했다. 그가 없었더라면 우리는 21세기 한국경제의 희망을 결코 이야기할 수 없었을 것이다.
염진섭(야후코리아 사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