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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횡설수설]전진우/43% 봉

입력 | 2000-01-23 19:12:00


영세업체의 노동자인 김씨는 거의 병원을 찾지 않는다. 아직 젊은 나이에 워낙 건강하기도 하지만 어쩌다 몸이 안 좋아도 병원 갈 짬을 내기도 어렵고 적은 수입에 몇푼이라도 아껴야 하기 때문이다. 대기업체 중견간부인 이씨의 노부모는 번차례로 병원을 찾는다. 이런 경우 보험료야 이씨가 김씨의 두 배 이상 낸다지만 김씨는 보험료만 내고 병원을 이용하지 않으니 당장은 노동자 김씨가 중견간부 이씨를 돕는 셈이다. 그렇다고 김씨가 억울해 할 일은 아니다. 언제 예기치 못한 사고나 병으로 병원을 찾아야 할지 모르고 그때는 그 역시 더 큰 도움을 받는 셈이니까. ‘아름다운 연대’로서 사회보험의 의의는 이처럼 ‘있는 자’가 ‘없는 자’를 돕는 소득재분배 효과에 상부상조의 사회적 가치가 결합되는 데 있다.

▷7월부터 직장 의료보험조합을 통합하면서 보험료 부과를 총소득 기준으로 조정한다고 한다. 같은 소득에 같은 보험료를 내도록 하는 것인데 그러다 보니 상대적으로 소득이 높은 43%의 보험료는 오르고 소득이 낮은 57%의 보험료는 내린다. 그러자 다시 ‘봉급자가 봉이냐’는 소리가 들린다. 하나 이번 경우는 ‘43%가 봉이냐’가 맞다. 57%도 봉급자이긴 마찬가지니까. 물론 한꺼번에 최고 50%까지 오른다는데 좋을 리 없다. 더구나 2년후라지만 지금처럼 지역조합의 소득파악률(28%)이 형편없는 상태에서 완전통합을 한다면 ‘유리 지갑’인 봉급자가 덤터기를 쓸 것은 뻔하다.

▷소득의 형평성이 담보되지 않는 한 국민연금이든 의료보험이든 뿌리내리기 어렵다. 명분이 아무리 좋은들 ‘나보다 잘사는 사람을 도우란 말이냐’, 이렇게 돼서는 배가 아파 안될 일이다. 지난해 국민연금 소동 이래 ‘봉급자가 봉이냐’는 소리가 그치지 않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정부가 남은 기간에나마 단단히 준비해서 이런 불만을 최소화해야 한다.

▷아무튼 의료보험제도를 유지해 나가기로 한다면 이제 ‘봉’소리는 보다 신중해져야 할 것 같다. ‘봉’이 돼도 참으라는 말은 아니다. 그러나 이번처럼 57%는 조용한데 43%가 ‘우리만 봉이냐’고 외치는 것은 아무래도 듣기에 뭣하지 않은가.

youngji@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