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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구 지하철공사장 붕괴]늑장대처가 부른 人災

입력 | 2000-01-23 19:12:00


대구 지하철 공사장 도로붕괴 사고는 어이없는 인재(人災)였다.

사고 발생 2시간20분전에 “공사장 도로가 내려앉고 있다”는 시민의 신고를 받고도 시공회사, 경찰 등이 늑장을 부리는 바람에 참사로 이어졌다.

95년 101명이 숨지고 169명이 중경상을 입는 지하철공사장 가스폭발사고를 겪은 대구시민들은 “당국이 도대체 이럴 수가 있느냐”며 흥분하고 있다.

▼사고발생▼

22일 오전 6시 10분경 대구 중구 남산동 신남사거리 대구지하철 2호선 8공구 공사장에서 길이 30m 폭 40m 가량의 아스팔트 도로와 복공판 등 철골구조물이 무너져 내렸다.

이 사고로 도로에 정차 중이던 대구70자2662호 좌석버스(운전사 김준동·48)가 20m아래 공사장으로 추락해 승객 이성숙(41·여·대구 중구) 정외선(43·여·〃) 조쌍구씨(41·대구 달서구) 등 3명이 숨지고 운전사 김씨는 중상을 입었다.

운전사 김씨는 “좌회전 신호를 기다리고 있는데 갑자기 ‘꽝’하는 소리와 함께 버스가 뒤로 기울면서 아래로 추락했다”고 말했다.

▼늑장대응▼

경찰 수사결과 지하철공사장 관계자들은 사고 발생 2시간 20분 전에 “공사장 지반이 가라앉고 있다”는 대구 Y운수 택시기사 김일환씨(38)의 신고를 받았다.

김씨는 “오전 3시 50분경 사고 현장을 지나던 중 복공판이 꺼져 있는 것을 발견하고 인근 지하철 7공구 현장사무실에 휴대전화로 신고한 뒤 승객을 내려주고 다시 현장에 와봤으나 아무런 조치가 이뤄지지 않은 것을 보고 오전 5시 4분경 다시 112와 지하철 8공구 사무실에 신고했다”고 말했다.

그러나 시공사(삼성물산 등 6개사 컨소시엄)의 현장 관계자들은 5시12분경에야 현장에 나온 것으로 밝혀졌다. 경찰도 신고접수 후 현장을 살펴본 뒤 10차로 도로 중 편도 5차로의 교통만 통제하고 버스가 추락한 반대 차로는 그대로 방치했던 것으로 드러났다.

공사장 관계자들은 지하 26m까지 뚫어놓은 지하터널의 외벽을 지지하는 버팀철제와 이를 지탱하기 위해 땅속에 묻은 강선(철심) 등 철 구조물이 토압(土壓)을 견디지 못해 지반이 침하한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대구지하철 2호선 공사장은 지난해 감사원 감사에서 7공구 등 3개 공사장의 설계잘못 등이 지적돼 시정지시를 받는 등 부실시공 논란이 끊이지 않았다.

▼수사▼

경찰은 사고발생 직후 삼성물산 등 6개 시공업체 현장 관계자와 감리업체 관계자 등 9명을 소환해 부실시공 여부를 밤샘 조사했다. 그러나 경찰은 이들이 설계대로 시공을 했고 안전조치도 제대로 취했다고 주장함에 따라 23일 오전 일단 이들을 귀가시켰다.

경찰은 23일 토목전문가들과 함께 현장에서 사고원인 조사를 벌였으며 곧 시공회사 관계자들을 다시 소환해 조사키로 했다.

95년 4월 대구 달서구 상인동 가스폭발 사고로 숨진 희생자 유족 모임인 ‘상인동 가스폭발참사 유족회’ 정덕규회장(47)은 “이번 사고가 등교길 학생들이 버스에 가득 탄 출근 시간대에 일어났다면 어떻게 됐겠느냐”며 “당국과 공사관계자들의 안전불감증이 또다시 사고를 불렀다”고 말했다.

cavatina@donga.com